2024-07-25 21:48 (목)
맛있게 먹고 성찰… 멋지게 늙어가야죠
맛있게 먹고 성찰… 멋지게 늙어가야죠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4.24 2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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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삶을 묻다 17
장이지의 시 '미인'
먹기만 하고 반성문 안 쓰며
허둥지둥 살아가면 안 돼
장이지 시인
장이지 시인

향유는 먹는 것으로 시작한다. 맛있는 공간을 찾아서 여행을 하고, 맛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진으로 남긴다. 그 사진을 SNS에 올린다. 맛과 음식으로 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다. 나는 맛있는 것을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 맛을 향한 집착은 끝이 없다. 사는 일이 먹는 일이라, 먹는 것을 빼놓고 삶을 이어나갈 수 없다. 그러나 왠지 그것이 목적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먹고 사는 일에 대해 성찰해 보고 싶을 때, 장이지 시인의 시 '미인'을 몇 번 읽어보면 어떨까?

어쩌면 잘 먹는다는 것은 잘 산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 먹는 것으로만 끝난다면 그것은 과연 잘 사는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잘 먹는다는 것은 수많은 타자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고, 또 수많은 타자들을 먹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사는 것인데, 먹고 마시고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다면 어떤가? 우리는 그것을 잘 산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장이지 시인이 시적 화자를 통해 말하듯이 '입에서 단내가 나지 않으면 하루가 끝나지 않고', '반성문 쪼가리도 없이/허둥지둥 삭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반문하고 있다.

기껏 잘 먹고 사는 세상에서 하는 일이 남에 대해서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말하고 사는 것이라면 얼마나 회의적인가?

지금이 가난해서 우유도 급식에서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시절보다 나아졌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장이지 시인이 이 시를 통해 말하고 싶은 '미인'은 무엇이나 잘 먹되 잘 먹은 만큼은 세상사를 돌아보며 성찰하는 사람이 아닐까. 적어도 '반성문 쪼가리' 정도는 가지고 늙어가는 삶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미인에 속하는가, 아니면 잘 먹는 사람에만 속하는가?

미인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지만,
급식비를 아끼느라
나는 우유가 먹기 싫다고
어머니께 거짓말을 하였다
그것은 또 어머니의 깨알 같은 전설이 되었지만,
그 부끄럽기만 한 가난은 그때부터 사무쳐
나는 내 빈상의 얼굴이 싫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나 잘 먹는 여자의 얼굴.
얼마 전 나는 이름만 아는 후배 하나를 데리고
노상 가던 식당보다는 더 좋은 식당에 가서

후배의 그 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엇이나 잘 먹는 여자를 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

그러나, 그러나
좀 펴지나 싶더니
중년은 정말 하잘것없다.
입에서 단내가 나지 않으면 하루가 끝나지 않고
반성문 쪼가리도 없이
허둥지둥 삭아간다.
어머니,인생이 원래 이런 거예요?

-장이지 시집 '레몬옐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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