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1 06:37 (금)
'프라하의 별'이 CEO의 가슴에서 빛나다
'프라하의 별'이 CEO의 가슴에서 빛나다
  • 임채용 기자
  • 승인 2024.04.23 2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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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곳] 양산상의 4월 CEO 조찬 세미나
강사 정우철 도슨트
주제 '미술극장 : 아르누보의 선구자 알폰스 무하'

상업·순수 예술에서 성공한 화가
파리서 첫 포스터로 기존 틀 바꿔
상업 미술 마침표 민족 작품 기획
'슬라브 서사시' 로 대가 명성 얻어
체코인의 가슴에 떠 있는 큰 별
23일 오전 7시 양산상의 4월 CEO조찬 세미나에서 CEO들이 정우철 도슨트의 강연을 듣고 있다.
23일 오전 7시 양산상의 4월 CEO조찬 세미나에서 CEO들이 정우철 도슨트의 강연을 듣고 있다.

23일 오전 7시 양산상공회의소 4층 컨펀런스 홀. 지역 'CEO 조찬 세미나'에 부지런한 CEO 120여 명이 모였다. 정우철 도슨트의 '미술극장'을 보고 듣기 위해서다. 지역 CEO들은 '아르누보의 선구자 알폰스 무하'를 만나 리프레시된 정신을 모아 더욱 경영에 매진하기 위한 열정까지 느끼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CEO 조찬 세미나는 양산상공회의소(회장 박창현)가 매달 주최한다.

'여인과 타는 촛불'(1933)
정우철 도슨트

국내 미술 해설에서 '아이돌 급'인 정우철 도슨트가 인도한 '프라하의 별'은 CEO의 가슴에 하나씩 빛났다. 그의 강연을 지면에 요약해서 싣는다.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1860~1939)는 체코 출신 화가로 아르누보를 대표한다. 아르누보(Art Nouveau)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서유럽 및 미국에서 유행한 장식 미술 양식이다. 알폰스 무하는 파리에서 활동하며 포스터와 실내장식 등에서 아르누보를 선도하면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체코 화가 알폰스 무하
알폰스 무하가 20년 동안 그린 20편 '슬라브 서사시' 작품

그가 프라하의 별이 되기까지의 스토리는 진한 감동을 깔고 있다. 그가 활동하는 시기를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라 부르는 이유는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처음 등장하고 영화가 상영되고, 지하철이 파리에 놓였다. 이런 편하고 행복한 시기에 문화예술이 진흥하면서 무하의 포스터는 인기를 쓸었다.

'모엣 샹동'(1899)
알폰스 무하가 20년 동안 그린 20편 '슬라브 서사시' 작품

무하의 어머니 아말리에 말라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말라는 독신주의자인데 꿈에서 계시같은 지시를 받고 아이 셋 딸린 홀아비와 결혼한다. 어머니한테 '신이 보낸 아들'인 알폰스 무하는 어릴 때부터 걸음마보다 그림을 먼저 그렸을 정도로 그림에 진심을 보였다. 체코 미술관에 걸려 있는 무하가 8살 때 그린 첫 작품 '예수의 수난(1868)'을 보면 완성도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당시는 천재들의 시대였기 때문에 무하의 재능은 완전히 인정을 받지 못했다. 프라하 대학 진학을 실패할 때 그의 대한 평가는 "재능에 대한 확신이 조금 부족하다"였다. 알폰스 무하는 30대 중반까지 그렇고 그런 화가였다.

'황도12궁'(1896)
알폰스 무하가 20년 동안 그린 20편 '슬라브 서사시' 작품

그 사이 파리에서 잡지와 광고의 삽화를 그리는 일을 하다 30대에 지원이 끊기자 결국은 인쇄소 공장에 자리를 얻어야 했다. 34살까지 인쇄소에서 보조 역할을 하면서도 '성실의 아이콘'으로 존재를 띄우며 '준비하면 기회는 온다'는 말에 딱 맞아 들어갔다.

그리고 당시 프랑스 최고 연극배우인 사라 베르나르의 포스터를 그리는 기회를 잡는다.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이 흥행에 죽을 쑤자 연극 상연을 알리는 포스터에 문제가 있다며 매니저가 인쇄소를 찾게 된다. 당시 성실한 알폰스 무하는 "내가 포스터를 그려보겠다"고 말하며 2주의 시간을 받고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그려냈다. 첫 포스터가 역사를 바꿔버린 것이다.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소녀와 튤립'(1920)
체코 화가 알폰스 무하

무하의 '지스몽다' 포스터는 파리 시민들이 보는 족족 뜯어가 버리는 인기를 누렸다. 무하의 포스터는 디테일에서 앞선 포스터와 달랐고 통상 사이즈와 다른 세로 215cm 크기가 눈길을 끌었다. 이 포스트는 4000장을 다시 인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알폰스 무하는 이 포스터로 파리의 셀럽으로 등단했다.

무하에게 온 '운'은 평소 갈고닦은 실력을 발현할 수 있게 했다. 그는 평소 일본 목판화인 '우키요에'를 즐겨 그렸기 때문에 디테일한 사라 베르나르의 포스터를 그릴 수 있었다. 그는 6년 전속 계약을 맺고 포스터 그리는 데 전념한다.

'메대 연극 포스터(1898)' 등으로 사라 베르나르를 반하게 한 알폰스 무하는 장신구 디자인 분야에서도 재능을 보인다. 알폰스 무하의 포스터 예술은 상업적으로 널리 쓰여 망하는 회사를 살리는 마력으로 통했다. 달력 겉표지 '황도 12궁(1896)', 담배 광고인 '욥(1896)', 비스킷 광고인 '플릿(1896)', 등에서 상업광고에 예술성을 듬뿍 담았다. 무하의 유명한 '모엣 샹동(1899)'은 샴페인 광고다.

알폰스 무하는 서민이 예술을 즐길 시간이 없다는 점에 착안에 길거리를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포스터를 길거리에 내걸은 것이다. 그는 "포스터는 더 많은 대중을 계몽하기에 좋은 수단이다. 일하러 가는 그들은 멈춰 서서 포스터를 보게 될 것이고 정신적인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거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전시장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무하는 50세에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 예술가로서 허전함에 휩싸인다. 그는 예술의 성취의 끝에서 채워지지 않는 한 가지를 이루기 위해 민족을 위한 예술을 위해 고국 체코로 가는 다짐을 한다. 상업 예술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이다. 알폰스 무하가 상업적 예술의 성공 위에 머물렀다면 대가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알폰스 무하가 20년 동안 그린 20편 '슬라브 서사시' 작품
'모엣 샹동'(1899)

민족을 위한 예술을 위해 의뢰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남겨둔다. 그것이 알폰스 무하의 장식자료집이다. 이 자료집은 후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줬다. 만화가한테 영감을 준 알폰스 무하. '세일러문', '카드캡터 체리' 등 현재 순정만화 작가는 무하에게 큰 덕을 봤다. 타로카드에도 무하의 터치가 들어있다.

알폰스 무하는 민족을 위한 예술을 위해 평생의 역작을 기획하고 '슬라브 서사시'에 몰입한다. 총 20편의 그림을 20년에 걸쳐 거대한 역작을 만든다. 20편의 작품을 연결하면면길이만도 120m에 이른다. 한 인간이 마음을 먹고 이루는 성취는 태산보다 클 수 있다는 실증이다.

알폰스 무하가 조국 체코에서 지내는 동안 나치가 유럽을 휩쓸면서 체코도 나치 군홧발 아래 들어간다. 79세 때 무하는 게슈타포의 고문을 받은 뒤 3일 만에 세상을 떠난다. 그의 마지막을 예견한 듯한 작품 '여인과 타는 촛불(1933)'에서 눈가에 눈물과 촛대에서 흘러내리는 촛농을 볼 수 있다. 그의 작품 '황야의 여인(1923)'과 '슬라브 서사시' 등에서 대가의 향기를 마음껏 쐴 수 있다.

정우철 도슨트

무하의 장례식에는 가족 외에 누구도 참가할 수 없다는 독일 나치의 체포 엄포에도 10만 명이 구름처럼 모였다. 무하를 존경하는 체코인들은 진정한 프라하의 별로 뜬 알폰스 무하를 가슴에 별처럼 달고 다닌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잠시 잊힌 알폰스 무하는 지금 모든 체코인이 좋아하는 최고의 예술가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한 국가와 국민이 성공적인 발전을 이루려면, 자신의 뿌리로부터 시작해 계속해서 유기적인 성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계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를 기억해야만 한다. 이 계속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는 안 된다".

알폰스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 앞을 오랫동안 걸어가면 거장의 숨결을 마시면서 체코가 사랑하는 프라하의 별이 하나씩 떨어져 가슴에 와닿는 감흥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알폰스 무하가 20년 동안 그린 20편 '슬라브 서사시' 작품
'황도 12궁'(1896)
알폰스 무하가 20년 동안 그린 20편 '슬라브 서사시' 작품
여인과 타는 불꽃(1933)
알폰스 무하가 20년 동안 그린 20편 '슬라브 서사시' 작품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소녀와 튤립'(1920)
알폰스 무하가 20년 동안 그린 20편 '슬라브 서사시' 작품
알폰스 무하가 20년 동안 그린 20편 '슬라브 서사시' 작품
알폰스 무하가 20년 동안 그린 20편 '슬라브 서사시' 작품
알폰스 무하가 20년 동안 그린 20편 '슬라브 서사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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