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루떡을 한문으로는 증병(甑餠)이라고 한다. 낙랑유적에서 동으로 된 시루와 흙으로 된 시루 등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그 역사는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루떡(甑餠)을 찌는 방법은 '범증증병법(凡蒸甑餠法)'이다. 흰쌀 1말을 기준으로 쌀가루 한 겹 한 겹 사이에 넣은 콩가루는 처음에 소금을 치지 않고 시루에 얹어 찐다. 시루에 증기가 피어오를 때 하얀 소금을 반 주발 물에다 풀어 간을 알맞게 맞춘 다음 찌꺼기를 버리고 맑은 물을 가져다가 시루에 골고루 뿌리고 찌면 찰기도 생기고 떡 맛이 좋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문집 『임하필기(林下筆記)』 제25권[춘명일사(春明逸史)]에 심양(瀋陽)의 고려촌(高麗村)에 중국으로 사로잡혀 간 우리나라 사람들을 이주시켜 살도록 한 곳으로 그곳 사람들의 풍속은 우리나라를 숭상해 논농사를 지으며 시루떡을 곧잘 만들어 먹는다고 나온다.
조선의 문신이며 정약용, 이가환 등의 정치적 스승인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1720~1799)에 대해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그의 시문집에 '오늘 들으니 번옹(樊翁)께서 장단(長湍)의 시골집에 계시면서 눈 오는 밤에 이 상소를 한두 번 읽고 나서 무우 시루떡 한 소반을 잡수신 뒤에 취침하신다고 하는데, 이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일단의 풍정(風情)이 있다'고 썼다.
번옹(樊翁)이 드신 무시루떡을 나복병(羅蔔餠)이라고도 한다. 전통민요 '떡타령'에 "10월 상달 무시루떡/ 동짓달 동짓날 새알시미"라고 했듯이 많은 종류의 시루떡 중에서 무를 섞어 만든 팥고물시루떡은 늦가을의 별미로 전해 오고 있다. 이때쯤이면 무가 가장 맛이 좋은 시기로 팥고물시루떡에 무를 채 썰어 넣으면 떡이 설익지 않고 잘 익으며, 무에 들어있는 효소가 쌀의 소화흡수를 도와주어 체할 염려가 없는 매우 합리적인 떡이라고 할 수 있다.
붉은 팥 시루떡은 10월 상달에 추수를 끝낸 후 부락의 조왕신이나 수호신께 부락의 연중무병과 평온무사 및 풍년을 빌던 등신제 때 켜를 두툼하게 하여 만들어 먹던 전통 떡이다. 그 밖에 이사를 하거나, 사업이나 어떠한 일을 새로 시작할 때, 함 받을 때 가장 많이 하는 떡으로, 붉은 팥고물을 쓰는 것은 잡귀가 붉은색을 무서워하여 액을 피할 수 있다는 주술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