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1 09:09 (일)
"사연 담긴 시계는 값 따지지도 않고 밤새워 수리하죠"
"사연 담긴 시계는 값 따지지도 않고 밤새워 수리하죠"
  • 김중걸 기자
  • 승인 2024.04.21 2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로 이사람] 여헌주 부산기능육영회장

부친 권유 시계 수리 48년째… 2년 만에 기능대회 금상
새 기술 적용된 시계 보면 어린아이처럼 들떠
"취업난에도 명품 시계 수리 유망 직종 분류 당연"
부산기능육영회 회장 맡아 20여 차례 국내외 봉사
"인류에게 중요한 도구 시계, 아끼고 사랑해달라"
여헌주 부산기능육영회장이 명품 시계를 수리하고 있다.
여헌주 부산기능육영회장이 명품 시계를 수리하고 있다.

"시계는 나의 삶이자 운명입니다." 여헌주 부산기능육영회장(62)은 부산을 대표하는 시계 수리 장인이다. 지난 1976년 까까머리 중학생 때부터 시계 수리 학원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면서 48년을 한결같이 시계 수리에 매진하고 있다. 헌신과도 가까운 그의 시계 수리 사랑은 자타가 공인한다. 부산시 부산진구 골드테마길에서 명품 시계 수리점 '현주사'를 운영하고 있는 여 회장은 40여 년 동안 시계 수리 현장에서 전설과 같은 장인이자 현역이다.

초교 6학년 때 부산으로 이주, 1982년 첫 시계수리 가게 열어

사천시 축동면에서 태어난 여 회장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친을 따라 부산으로 이주했다. 보수동과 감천동에 살면서 초등학교 6학년 두 학기 동안만 2곳의 초등학교를 옮겨 다녔다. 당시에는 다들 어려웠던 시절이어서 어른은 물론 아이들도 집안을 도우러 공사장이나 공장 등으로 일을 나갔다. 몸이 허약했던 허 회장은 친구들처럼 요즈음 말로 아르바이트를 나갈 수 없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느 날 "시계 수리학원에 다녀 보지 않겠느냐?"는 부친의 말에 이끌려 지난 1976년 시계 수리학원 문을 두드렸다. 운명과도 같은 시계 수리와의 인연은 그때부터 50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는 특유의 부지런함과 높은 열정으로 금세 시계 수리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낮에는 중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학원을 오가던 그는 2년 만에 큰 상을 타게 된다.

손재주가 있는 데다 꼼꼼한 성격으로 작고 정밀한 시계 부품을 들여다보는 것이 적성에 잘 맞았는지 시계 수리 입문 2년 만인 지난 1979년 부산시 기능경진대회 시계 수리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자타가 공인하는 부산 대표 시계 수리장인 탄생의 서막이 오른 것이었다. 여 회장은 3년 후 지난 1982년 부산 귀금속 거리인 범천동 지금의 골드테마거리에 25㎡ 남짓한 시계 수리 가게를 처음으로 열었다. 골드테마 거리에는 대형 시계점을 비롯해 금은방 등 귀속 가게가 휘황찬란하게 불을 밝히고 있지만 그의 첫 가게이자 인생 가게인 현주사는 40여 년간 거리를 지키고 있다.

작은 시계 수리 가게에는 제자들이 (시계) 수리 과정을 배우고 있다. 여 회장은 주로 제자들이 퇴근하면 홀로 조용히 시계 수리 작업을 한다.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시계는 주로 초고가 명품 시계다. 작게는 수천만 원에서 크게는 수억 원대에 달하는 해외 명품 시계가 그의 손길을 거친다.

시계를 수리 중인 여헌주 회장.
시계를 수리 중인 여헌주 회장.

'시계'는 "나의 운명이자 인생"

그는 시계 수리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다 시계에 대한 철학마저 단호하다. 시계의 가격을 따지기 보다 인간에게 시간이라는 의미를 일깨워 주는 철학적인 의미를 좋아한다. 시간은 세월로 이어지고 세월은 인간의 노화의 과정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시간은 금이다'라는 속담이 있기도 하다.

해시계부터 현재의 원자시계로 이어지는 시계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산물이기도 하다. 해시계(SunDial)는 인류 최초의 시계다. 단순히 막대기를 세워 놓고 그 그림자를 보고 시간을 측정하는 단순한 방식이었지만 복잡하게 변하는 태양의 움직임 때문에 정확한 시간을 잴 수 없었다. 이후 양초 등 불을 이용하는 불시계, 동력을 이용한 기계식 시계인 중량 시계, 서기 1510년 스프링을 이용한 휴대용 시계가 발명되면서 이후 시계 기술은 획기적인 진보를 하게 된다. 1600년 즈음 갈릴레이가 증명한 진자의 동시성 운동을 1656년 네덜란드의 호이겐스가 실제로 시계에 적용하면서 진자시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개발된 진자시계는 하루 오차가 20초 이하로 당시로서는 대단히 정확한 시계의 탄생이었다. 현대에는 과학기술이 진일보하면서 음파로 움직이는 시계나 수정의 진동을 이용한 시계, 원자나 분자의 고유 진동수가 일정함으로 이용한 원자시계까지 등장했다. 지난 1900년대 후반 퀴즈 시계의 저렴한 가격과 정확성에 밀려 기계식 시계는 쇠퇴기를 맞았으나 2000년대 들어서는 기계식 시계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스마트 워치 등이 가세하고 있지만 복고 분위기가 되살아나면서 명품 시계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손목시계는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하면서 명품 시계 시장은 흔들림이 없다. 시계에서 시간을 보는 것 만이 아닌 다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현대의 기계식 시계는 그 정교한 기술력과 세공 기술이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과도 같은 반열에 올라 수집가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부산기능육영회가 필리핀 세부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16년 부산기능육영회가 필리핀 세부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계 수리에 진심, 새로운 시계 보면 열광

여 회장은 시계 수리에 진심이다.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시계를 보면 마치 어린아이처럼 들뜬다. 한 번 수리해 보고 싶다는 욕구는 그의 시계 수리 철학과 진정한 기술자 즉 장인정신을 엿보게 한다. 대단한 일벌레인 여 회장은 정교함을 요구하는 시계 수리 특성상 밤을 새워 일할 때가 많다. 일이 몰릴 때는 하루 꼬박 잠을 자지 않고 작업에 몰두한다. 그의 수리 명성은 전국에서 쇄도하는 수리 의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해외동포들이 인편으로 시계 수리를 맡겨 오기도 한다.

시계 수리 일감이 많으면 직원과 제자들을 도와주기도 한다. 매일 많게는 50여 개의 시계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그는 "수리를 의뢰해 오는 시계는 부친의 유품,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이 남긴 유품, 소중한 사람에게 받은 선물 등 다양한 사연을 품고있다"며 "값어치를 떠나 사연이 담긴 시계 등이 의뢰를 오면 값을 따지지 않고 밤을 새워 수리해 준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편하게 하려면 비싼 시계만 수리하면 된다. 하지만 일부러 저를 찾아온 고객을 차마 거절하지 못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의 마음이 선한 눈망울과 많이 닮았다.

지난 2016년 부산기능육영회 해외 봉사단이 필리핀 세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부산기능육영회 해외 봉사단이 필리핀 세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시계 수리업계 취업 전망 밝아

여 회장은 시계 수리업계의 노화를 고민한다. 고령화된 시계 수리기능인을 하루빨리 젊은 층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까르띠에, 롤렉스, 피아제 등 명품 브랜드를 한국지부에서 AS 한 번 받으려면 대기표 뽑고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이런 기업들은 젊은 수리 기술자를 원하는데 국내에는 시계 수리 명맥을 이을 젊은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외국에서 인력을 데려온다는 말도 있는데, 같은 업계 종사자로서 참 씁쓸하다"고 말했다.

제자이기도 한 조카는 해외 명품 시계 업체에서 일하며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폴리텍대학 7대학에 편입해 기계가공기능장을 전공·졸업했다. 직업능력개발 훈련교사와 동서울대학교 시계주얼리학과 외래교수로 3년간 시계 수리 강의를 하기도 했던 여 회장은 "시계 수리를 제대로 하려면 개인교습 등 수련 기간이 제법 오래 걸린다"며 "취업난이라고 하나 한길만 쫓는다면 명품 시계 수리는 유망직종이기도 하다"며 청년들에게 권했다.

지난 2017년 여헌주 부산기능육영회장이 필리핀 세부공과대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7년 여헌주 부산기능육영회장이 필리핀 세부공과대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외 봉사활동에 심취

시계 수리 1급 기능사로 대한민국 시계 수리 신지식과 시계 항공 명인으로 선정된 여 회장은 한국시계기술협회 부산지회장, 부산광역시기능경기대회 기술부위원장, 기능올림픽 심사장과 출제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16개 직종의 기능인으로 구성된 '부산기능육영회' 16년째 회장을 맡아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임기 2년인 육영회장직을 지난 2008년부터 내리 맡고 있다.

여 회장은 미용, 재봉틀 등 다양한 기능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몽골 등 20여 차례 해외봉사와 부산 기장군 등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 부산연제라이온스클럽 회장, (사)부울경신지식인협회 수석부회장, 법무부 부산교도소 교정협의회 부회장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했다.

지난 2019년 부산기능육영회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9년 부산기능육영회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심마니로 찾은 건강, 다시 시계 수리에

고장난 시계를 고치려면 200여 개의 부품을 2~3번씩 세척해야 하고 조립하려면 1000번 이상의 손목을 움직여야 한다. 그런 초정밀 작업으로 그의 손목은 탈이 나고 건강도 나빠졌다. 여 회장은 주말이면 산을 찾아 심마니가 된다. 산에서 손수 채취한 약초와 산삼으로 건강을 되찾고 또 이웃들에게도 약초 홍보에도 열심이다. 그는 김해시 대동면에 작은 텃밭을 일구고 있다. 채소는 물론 특용 작물을 심어 가꾸는 소일로 건강도 되찾고 있다. 이 또한 여 회장은 운명 같은 시계 수리를 위한 건강 지키기 지침으로 삼고 있다.

여 회장은 "시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명백히 불가역적인 연속상에서 발생한다. 또 시계는 인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시계는 그 시간을 알 수 있게 한다. 시계는 인류에 있어 중요한 도구다. 앞으로 영원히 인류와 함께할 시계를 아끼고 관심과 사랑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