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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에 대하여
개소리에 대하여
  • 경남매일
  • 승인 2024.04.2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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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수년간 계속해 오던 주역 공부를 잠시 멈추고 탈 난 몸 치료차 병원을 드나들기 달포가 넘었다. 진료만 계속 받다 보니 답답해 마음을 다스리는 교양서를 보려고 서재를 기웃거렸다. 미국의 대중심리학자인 브레네 브라운이 쓴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이은경 역 북라이프)>가 눈에 띄었다. 이 책을 읽다가 '개소리에 대처하기'라는 챕터에서 프랭크 피트 박사의 저서인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를 인용한 내용이 궁금해 한 권 샀다. 양장본의 아담한 사이즈(6x12cm)로 겨우 93쪽에 불과해 무슨 읽을거리가 있을까 긴가민가했다.

그러나 찬찬히 읽어보니 이 시대를 냉철하게 통찰한 알찬 내용들이라 단숨에 독파했다. 지난 2005년에 발간된 이 책은 당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만큼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번역 책 제목을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비속어로 정한 것은 퍽 도발적이고 파격적이다.

불시트(Bullshit)의 사전적 정의는 헛소리, 허튼소리, 엉터리, 실없는 소리, 허튼수작, 허풍, 과장, 바보 같은 소리, 터무니없는 소리 등으로 번역된다. 철학서에서는 대개 빈말, 헛소리의 개념으로 인용되고 있다. 그런데 역자인 이윤(워싱턴 주립대 MBA) 씨는 이 책에서 화자의 숨은 의도가 있다는 저자의 논지에 따라 헛소리로 번역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어 비속어지만 직설적인 '개소리'로 번역했다고 한다. 필자도 책을 읽어보니 개소리가 저자의 저술 의도를 잘 드러낸 번역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에 대한 국내 독자들의 서평을 읽어보니 역시 개소리가 적절한 번역이라고 동의하고 있다.

우리는 진실 혹은 거짓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화자를 판단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 둘에 속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발화(發話:내뱉는 말)인 개소리의 개념을 소개하며 글을 시작한다. 개소리가 아닌 것들, 예를 들면 협잡, 거짓말, 실수 등과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한다. '개소리쟁이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더 큰 진리의 적이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개소리는 아무 말이나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진리에 무관심하며 발화의 책임에서 자유롭다.

이성이 있는 우리는 이를 구분하고 현혹되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 예로 미국의 전 대통령 트럼프는 재직 중 하루 15.8회의 거짓말(개소리)을 했다(워싱턴포스트지 팩트체크팀 조사기록). 올해 미국대선전에서도 똑같은 행태로 유권자들을 호도하고 있다. 개소리의 맹점은 말의 사실 여부가 중요하지 않으며 특정 입장을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공고히 하여 그 개소리가 확대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 분야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 4·10 총선에서도 개소리가 난무하는 난장판은 여전했다. 진리는 묻히고 페르소나로 가장한 개소리가 마치 진실인 양 확산되어 어리석은 민중들을 호도했다. 정의의 사도인 양 사자후를 토하는 개소리쟁이들의 약자 코스프레를 추종하며 맞장구를 쳤다. 물 만난 고기마냥 기고만장하는 정치꾼들의 개소리에 역겨움을 느꼈다. 문득 미국 조지타운대 제이슨 브라운 박사가 쓴 <민주주의에 반대한다(Against Democracy)>가 떠올랐다. 이 책은 중우정치로 타락해 버린 무능한 민주주의를 신랄하게 질타하고 있다.

<개소리에 대하여>는 반이민 정서와 인종차별을 부추기며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더 많은 개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적시한다. 저자는 개소리가 끼치는 사회의 악영향에 대해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사심 없이 노력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무너뜨린다.'고 했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SNS에서 내로남불의 정치꾼들이 쏟아내는 개소리가 점입가경이다. 어디 정치인들뿐이랴.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고위 권력층과 제 잘났다고 목에 힘주는 엘리트 집단의 힘겨루기도 개소리 소동과 다름없어 보인다. 아무리 제 잘난 맛에 사는 세상이라지만 배운 데가 넘사벽이라도 본데가 개차반이면 사람대접받기는 글렀다.

이 책의 특징은 개소리의 제 현상을 철학적으로 접근해 해석했다는 점이다. 흔한 비속어인 개라는 접두어를 붙인 복합명사를 형이하학적으로 해석했다면 독자들로부터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개소리쟁이들은 자신의 이익과 관계되지 않는 내용은 언급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 오직 자기 집단의 목적에 맞도록 그 소재를 선택해서 그럴듯하게 조작해 낼 뿐이다.

개소리가 이처럼 위험한 것은 진리에 전혀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거짓말, 헛소리는 진리를 철저하게 부정하기 때문에 결국 진리를 인정하는 셈이다. 개소리쟁이가 이 책을 읽고 '개소리하고 있네.'라며 빈정댈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억지 주장과 비토(veto)가 초래할 민초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진리에 무지한 자가 바로 개소리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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