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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과 함께 사라진 창원 향토음식 '熟漬'
가마솥과 함께 사라진 창원 향토음식 '熟漬'
  • 경남매일
  • 승인 2024.04.1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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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증숙(蒸熟) 문화를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은 곡물을 넣고 시루에 쪄 먹는 토기 문화에서 청동기 시대(靑銅器 時代)와 철기시대(鐵器時代)에 이르러 가마 또는 가마솥이 등장하며 짓는 문화로 접어든다.

꼬챙이와 칼만 가지면 되는 서양의 구이[炙]문화와 달리 찌는 문화와 짓는 문화의 기본 주방 기구가 시루와 가마솥이다.

우리는 가마솥을 줄여서 그냥 가마라고도 한다. 가마솥은 다리가 없고 솥 바닥이 둥글며 대개 입구의 가장자리가 약간 오므라들어 있다. 몸체에 네 개의 귀가 달려 있어 부뚜막에 걸쳐 놓기에 편리하다. 뚜껑도 무쇠로 만들며 여닫을 때 편리하게 가운데에 꼭지가 달려 있다.

가마솥의 핵심 원리는 솥 안의 압력을 높인 상태로 유지하고 물의 끓는 점을 120도까지 높여 짧은 시간 내 밥알을 익혀 준다. 통째로 서서히 가열돼 장시간 높은 온도를 유지하는 무쇠의 특성과 가마솥을 위에서 눌러 높은 압력을 내도록 하는 무거운 솥뚜껑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마솥 밥을 지을 때 물 조절을 하여 밥을 짓게 되면 쌀이 2.2배로 불어나게 된다. 가마솥에 쌀을 안치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가마솥 뚜껑 사이로 수증기가 오르고 그 수증기가 볼록한 가마솥을 타고 흐른다. 옛사람들은 우리의 한(恨)과 연결하여 가마솥의 눈물이라고 한다. 이 가마솥의 눈물은 혹독한 시집살이로 눈물조차 마음대로 흘리지 못하는 어머니들의 서러움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가마솥이 밥이 끓으면 가마솥 뚜껑을 잠시 열고 보통 15분에서 30분 동안 뜸을 들이는데, 뜸을 들이는 동안을 절대로 가마솥 뚜껑을 열지 않는다. 뚜껑을 열게 되면 증기와 함께 열이 날아가 버리면 밥솥 내의 온도가 급속히 내려가게 된다. 이때 증기는 물방울이 되는데, 이것이 밥이 질고 싱겁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가마솥에서 밥을 뜸 들일 때, 가지나 계란찜 등을 넣고 쪄서 먹기도 했다. 이것을 익지[熟漬]라고 한다. '익지'야 말로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가족을 생각하는 한결같은 사랑과 정성스러운 마음이 담긴 따뜻한 음식이다.

필자의 할머니는 한여름 손자의 군것질거리 즉 간식용으로 애호박을 반으로 갈라 가마솥에 밥을 뜸 들일 때 넣고 쪄서 양념간장에 찍어 먹게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단순히 군것질거리가 아닌 가지, 애호박, 깻잎, 고추찜, 계란찜, 장떡 등속을 가마솥에 밥 뜸 들일 때 넣어 익으면 양념을 해 반찬으로 내놓았다.

이처럼 '익지'는 전국 어머니들의 지혜가 담긴 조리법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 등장한 것이 경남 창원지역의 향토음식 '익지'다.

이 '익지'는 옛날 가마솥에 밥 뜸이 돌 때 씻은 배추를 얹어놓으면 밥풀 때쯤 살짝 익는다. 그 배추에 김장양념을 버무린 것이다.

가마솥 밥이 아닌 전기밥솥을 사용하는 지금은 '익지'는 사라져 가는 음식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요즘 비록 가마솥은 없지만 통배추를 더운물에 살짝 데친 후에 쇠고기, 돼지고기, 숙주나물 따위를 양념하여 배추 속에 넣고 국물 없이 쪄낸 음식이 있기는 하지만 밥 내음이 베인 밥 할 때 가마솥에 쪄낸 창원의 향토음식 '익지[熟漬]' 맛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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