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5 23:31 (토)
만기친람과 약팽소선
만기친람과 약팽소선
  • 경남매일
  • 승인 2024.04.14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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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치열했던 총선경쟁에서 집권여당이 굴욕적인 참패를 당했다. 민심을 헤아리지 못한 오만과 독선의 만기친람(萬機親覽)이 자초한 결과라 유구무언이다. 만기친람은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로 '임금이 온갖 정사를 일일이 몸소 다스린다'는 뜻이다. 아랫사람을 믿지 못해 나랏일을 하나하나 직접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독불장군식 리더십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제이다.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에는 진시황의 방술사(方術士)인 후생과 노생이 황제의 만기친람을 비난하며 모의한 글이 나온다. '진시황의 사람됨은 천성적으로 고집이 세고 사나우며 자기만 내세우는 데다, 제후에서 궐기해 천하를 병탄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함으로써, 예로부터 아무도 자신을 능가할 자가 없다고 여기었소. 전적으로 옥리(獄吏: 죄를 다스리는 관리)만을 중용하니 옥리는 친애와 총애를 얻었소.

그러나 박사는 비록 70명이나 되었지만 머릿수만 채웠을 뿐 중용하지 않았소. 승상과 모든 대신들은 이미 결정한 일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위에서 결정하는 대로 따르고 있소. 황상은 형벌과 살육으로 위엄을 삼는데, 천하는 죄를 두려워하며 녹봉에만 연연할 뿐 아무도 충성을 다하려 하지 않소..... 심지어 하루에 처리할 결재문서를 중량을 달아서 처리하고, 대신들은 황제가 결정한 일만 명령받고 황제는 자신의 허물을 간언하는 신하는 가차 없이 처단하였소. 대신들은 황제의 비위만 맞추며 아첨하니 직언을 고하는 신하는 없소.' 예로부터 상명하복의 독단적 만기친람은 끊임없이 행해져 왔다. 직언을 고하는 충신과 올곧은 신하는 귀양 가거나 토사구팽당하고, 부간부염통(附肝附念通: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함)하는 간신 모리배들로 가득 차서 나라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우리 헌정사 70년을 회고해 보면 만기친람을 행하지 않은 대통령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현 대통령에 대해서 야당을 비롯한 재야단체에서는 국정을 독단적으로 운영하며 만기친람한다고 거세게 비판해 왔다. 그 결과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내걸었던 국정심판이 승리했다. 대통령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국가기강을 확립하겠다는 의지라고 애써 강조했지만 오만과 독선의 국정운영은 결국 메아리 없는 민심이반으로 귀결되었다.

서산대사라는 필명으로 기고한 어느 분의 칼럼을 읽어보니 만기친람의 본뜻이 명징하게 드러나기에 일부 인용해 전제한다. '한두 사람의 지도자나 관료가 모든 일을 처리하기에는 세상일이 너무나 복잡해졌다. 하루 24시간 밀려드는 사안의 내용은커녕 그 사안의 개념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측근 몇 사람의 말이 기준이 되기 일쑤고 판단은 치명적인 오류가 된다.

또한 매사에 직접 관리하는 리더의 이런 자세는 부하들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조직을 침체에 빠지게 한다. 하나의 조직을 이끄는 리더라면 자신의 능력만 믿고 모든 일을 다 처리하기보다 아랫사람들에게 업무를 이양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도록 하는 자세가 훨씬 더 필요하다…' 백번 지당한 말이다. 만기친람의 독단적 리더십은 결국 윗사람의 입만 쳐다보게 한다.

더 큰 문제는 만기친람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그 화는 모두 리더 자신에게 돌아가 국정불신의 빌미가 된다. 특히 이런 만기친람에 대한 반대 세력들의 무차별적 공격은 증오의 정치로 변질돼 국정을 마비시키는 여론선동의 수단으로 악용되기 마련이다. 이번 총선을 통해 노정된 정치선동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 정치가 자가당착의 모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범법 혐의로 입건당한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이 사자후를 토하며 상대비방과 자기변명만 일삼고, 그들을 추종하는 중우세력들의 약자 코스프레는 가관이었다. 높아진 국민의식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한국정치의 후진성은 백년하청이다.

만기친람에 대비되는 말로 노자도덕경에 '치대국 약팽소선(治大國 若烹小鮮)'이라는 경구가 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작은 생선을 삶듯이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노자의 무위(無爲)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말로서 작은 생선을 삶듯이 그대로 두고 기다리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큰 나라를 다스리든 작은 지방을 다스리든 법으로만 다스리려고 하면 염치도 없이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 나갈 뿐이다.

무위자연의 도는 나와 너, 선악과 시비 등의 분별이 없으므로 만인과 만물이 하나가 되어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분별만을 따지면 증오가 증오를 낳을 뿐이다. 이기적인 탐욕이 절로 사라지도록 피아(彼我)를 포용하고 화합해야한다. 이제 민심을 외면한 만기친람의 독선은 무위의 약팽소선으로 화육(化育)함으로써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정심(正心)으로 심모원려(深謀遠慮)하여 수기치인(修己治人)할 때, 한국의 미래를 밝히는 정치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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