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8 16:06 (토)
헛된 말도 지속 반복하면 진실처럼 여겨져요
헛된 말도 지속 반복하면 진실처럼 여겨져요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4.11 2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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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넘기기 ⑬
감정은 온전히 내 안에서 일어나
진실 아니라도 감정이 격앙 돼
정인규의 '시선 과잉 사회' 책표지.
정인규의 '시선 과잉 사회' 책표지.

할 말을 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넓으면 진실이 설 자리가 넓을까?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마구 생산된 말들이 '진실로 포장한 거짓 옷'을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성이란 말도 애매하다. 사실성도 맥락이 있다. 맥락 없이 어떤 부분을 뭉텅 잘라내서 이것을 사실이라고 제시했을 때, 부분적인 사실이 전체에서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사회가 복잡할수록 정신을 단단히 차려야 한다. 어느 정도의 논리성도 갖추고 지식도 있어야 한다. 사회를 보는 안목과 전체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눈도 있어야 한다. 그저 따라만 가다가는 사회의 꼭두각시가 돼 춤을 추다가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 진실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선을 자로 재듯이 그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거짓 앞에서, 자본주의의 욕망 앞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는 힘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작가는 '감동의 진동과 진심은 다르다.', '상대방이 진심이 아니더라도 내 감정이 격양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 감정은 결국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자극에 반응하기 때문에, 온전히 내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고 한다. 상대방의 진심이 뭐든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내가 무엇을 중시하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욕망에 눈이 멀면 내 욕망을 자극하는 말이 여과없이 진실처럼 들린다. 유혹도 내가 무엇을 품고 있느냐의 문제다.

복잡한 세상에 제대로 눈 뜨고 살고 싶다면, 이 시선 과잉 사회에서 나만의 길을 찾아서 많이 흔들리지 않고 가고 싶다면 정인규의 '시선 과잉 사회'를 권한다.

책 내용 중 마음에 새기면 좋을 구절들을 부분적으로 편집해서 여기에 소개한다.

'현대인에게 소셜 미디어는 자유로운 대화의 장을 상징하기도 한다. 본디 의견의 표현과 대화는 청각과 관련된 활동이었다. 대화를 할 때는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놓치면 다시 들을 수 없다. 청각은 기억에 의존해야 한다. 오늘날 커뮤니케이션에서 시각이 차지하는 지분은 압도적이다. 의견은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에 가까워졌다. 시각을 집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순전히 자기만족을 위해 예쁜 옷을 입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쁜 것을 향한 욕구에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이 그 저변에 깔려있다. 내가 개성 있는 스웨터를 보고 '마음에 든다', 내지는 '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 스웨터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판단이다. 고립돼 사는 사람은 옷을 입을 수 있을지언정 패션을 가질 수는 없다.'-'데이터와 패션'에서

'뜯어보기를 강요하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객관적 사실성은 커뮤니티의 기호에 따라 뜯기고 뜯겨 가루가 된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사실성의 벽을 초월한다. 오히려 벽을 가루 더미처럼 주물럭거린다. 또 내가 아무리 극단적이고 희귀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어도 인터넷을 이용해 손쉽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내 조명으로 비출 수 있다.' 작가는 이 말을 통해서 이러한 유연성이 음모론의 양성에 매우 우호적인 조건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진실에 대해 느슨한 관념만 탑재한 채 생활한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앞다투어 해답을 제시했으나 어느 한 가지 이론이 명백하게 지배적이지는 않았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사자성어의 기저에는 헛된 말도 여럿이 반복하면 진실처럼 여겨지게 된다는 뜻이다. 거짓 소문과 진실을 가려낼 기준이 존재하며 거짓을 믿는 이들도 진실을 확인한 사람들에게 충분히 노출됨으로써 거짓을 거짓으로 알아볼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돼 있다.' -'가루진실'에서

무조건적으로 보도내용이나 주변 내용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고 사실 여부를 알아볼 생각을 해야 한다. 누군가가 흘린 거짓된 정보나 프레임에 포획되기도 한다. 한 번 믿고 나면 진실이 밝혀져도 진실을 믿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다. AI시대라서 인간이 별로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지적 기반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따져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할 일이다.

작가는 '진심은 내용이 아니라 태도다. 서로의 장벽을 허물고 약간은 벗은 채로 안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준 상태를 의미한다.'고 하면서 '진심으로 말하고 행동한다' 표현이 맞다고 한다.

내가 먼저 문을 열어둬야 상대와 진심으로 통할 수 있다. 우리는 진심과 진실에 배가 고프다.

'시선 과잉 사회'에서 진실에 대한 고민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다. 이 책을 따라가 보면서 고민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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