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3 19:32 (일)
광개토태왕릉비에 보이는 왜와 가야의 관계
광개토태왕릉비에 보이는 왜와 가야의 관계
  • 경남매일
  • 승인 2024.04.08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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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자들 능비 구절 '왜=가야'로 해석
문화선진국 약탈자로 폄하하는 주장
불합리한 가설 통설로 받아들여선 안돼
도명스님
도명스님

현재 중국 집안시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태왕릉비를 보면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엿볼 수 있다. 여기에는 북쪽의 비려, 서쪽의 후연, 동쪽의 숙신·동부여를 비롯해 남쪽의 백제와 신라 그리고 왜가 나오는데 고구려가 가장 싫어했던 상대는 백제와 왜였다. 그래서 백제를 지칭할 때 백잔(百殘) 또는 잔국(殘國)이라 했는데 이때 '殘'은 '죽일' 또는 '찌꺼기'의 뜻이다. 그리고 백제와 종종 연합하는 왜 또한 고구려가 매우 싫어해 도적을 말하는 왜구(倭寇) 또는 왜적(倭賊)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구려 입장에서는 강력한 주적인 백제도 싫었지만 항상 백제와 내통해 고구려를 노략질했던 왜도 백제만큼이나 경멸했다.

그런데 일각에서 고구려를 성가시게 했던 왜를 가야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중에는 주류사학자뿐 아니라 재야 사학자와 일반 역사 매니아들도 있다. 능비 <경자년조>에는 '倭背急追 至任那加羅 從拔城'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런데 왜가 가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고구려군이 임나가라 종발성 즉 금관가야인 김해의 분산성이나 부산의 배산성까지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문과 역사서 그 어디에도 가야가 백제나 왜와 연합해 고구려와 싸웠다는 기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사 주류 사학자들 대다수가 능비에 나오는 임나가라는 가야가 맞고 그 위치는 한반도 남부라고 말한다.

또한 이들은 왜인 가야가 고구려군의 남정(南征)에 의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이후 점점 쇠락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즉 가야의 쇠락 원인을 태왕이 보낸 5만 고구려군의 남정 때문이라고 아예 못박고 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일본의 역사학자 다나카 도사아끼 교수가 만든 <전기가야현맹>과 <후기가야연맹>이라는 '가야연맹설'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황당한 일은 그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검증 안 된 가설이 통설이 되고 또 그 통설을 근거로 온갖 논문과 책이 쓰여지고 있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광개토태왕릉비나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 「백제본기」 「신라본기」 그 어디에서도 가야가 등장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능비에 나오는 왜가 곧 가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야가 한반도에 분명히 있었는데 모든 기록에서도 전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왜가 가야였기에 따로 기술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근거도 전혀 없을뿐더러 합리적인 추정도 아닌 학자 개인의 뇌피셜에 불과하다. 사실 이들의 근거없는 주장 때문에 탄생부터 멸망까지 높은 품격을 지녔던 국가인 가야를 남의 나라나 약탈하는 천박한 국가로 전락시켰다. 문화선진국 가야를 미개한 해적 또는 약탈자로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가야는 서기 42년 구지봉에서 왕을 원하는 백성의 뜻에 부응해 김수로왕이 건국한 나라다. 그리고 서기 532년 구형왕은 착한 백성이 피를 흘리는 것을 우려해 신라에게 평화롭게 나라를 넘겼다. 이렇게 국가를 평화적으로 양도한다는 것은 가야의 지도부가 정신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내릴 수 없는 결정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당시의 지형을 봐도 고구려와 가야는 백제와 신라처럼 국경을 접하고 있지 않다. 고구려와 가야의 직접 충돌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 이유이다.

가야는 일찍부터 삼국과 달랐고 오히려 특정 시대는 삼국보다 앞서는 문화와 기술력을 뽐내던 나라였다. 김해 양동리 고분군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다양한 방식의 고분이 밀집되어있는 곳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발견된 초기시대의 무덤 크기나 유물은 동시대 고구려·백제·신라를 능가하기도 한다. 특히 가야초기에는 신라보다 무력에서도 앞서는 것으로 『삼국사기』에 여러 번 나온다. 가야는 평화를 사랑했기에 상대국을 먼저 침범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러한 가치관을 가진 선한 나라가 시도 때도 없이 명분없는 침략 전쟁을 일으킬 리가 없다.

능비에 등장하는 왜의 정체는 대마도나 열도에 본거지를 두고 백제와 연합했던 해적집단 정도였다. 때로는 백제의 용병으로 때로는 백제의 행동대장으로 고구려의 변방을 괴롭히던 군사집단이었다. 그들과 대륙에 위치한 품위있는 국가인 가야와 결코 동일시해선 안 된다. 우리의 고대사는 외침과 병화 그리고 자국 내의 수서령(收書令)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훼손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있는 기록을 부정하고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외국 학자 개인의 가설을 통설로 확정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왜냐면 역사는 학문의 영역에서 끝나지 않고 국제관계에 있어선 매우 현실적인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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