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의 문화요 정체성이기 때문
그림 아픈 사람 치유하는 약과 같다
수필가이자 시인이고 취미로 고서화를 수집하고 퇴직 후에는 고서화로 갤러리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다. 여기서는 작가가 아니라 고서화를 수집해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사람으로 조명한다. 바로 김해 갤러리 대표 양민주 고서화 수집가 (이하 양 대표)다.
양 대표의 삶은 아주 소박하다. 그림 외에 다른 곳에는 소비를 최대한 줄인다. 그림을 보러 다니고 술도 소박하게 마신다. 막걸리에 파전을 먹으며 아낀 돈으로 그림을 산다. 그림을 사는 것이 유일한 사치라고 했다.
2년 전 수로문학회 사업 ‘지역작가를 조명하다’ 작가로 선정돼 인터뷰할 기회가 있어서 김해 갤러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갤러리에 몇 시간 머물며 그림을 보고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뒤에도 꾸준히 왕릉공원 앞 갤러리를 지날 때마다 갤러리에 걸려있는 고서화 작품을 보며 일반 시민에게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알려달라고 말할 결심을 했고 인터뷰 제안을 했다. 오랫동안 양 대표의 답변을 기다렸다.
'옛날 산수화를 보면 가만히 서서 몇 시간이든 바라볼 수 있다. 좋은 그림은 고서화뿐만 아니라 종류를 불문하고 치유의 효과가 있다. 돌이켜보면 그림은 수십 년 동안 나에게 위안과 즐거움을 줬다'고 양 대표는 말했다.
다음은 양 대표에게 보낸 서면 질문지를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시와 수필을 쓰는 작가로 알고 있다. 작가로 등단하기 전부터 그림에 관심이 있었는가?
2013년 '아버지의 구두' 수필집을 출간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수필집에는 글의 내용에 맞게 삽화가 들어 있다. 삽화는 친구인 범지 박정식 서예 작가가 수묵으로 그렸다. 그림을 그려준 친구의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김해 도서관 갤러리에서 삽화 전시를 기획하였다. 전시 작품을 표구하기 위해 표구점을 들락거렸는데 그때 표구점에서 아석 김종대의 십 폭 매화 병풍을 구입했다. 낡은 병풍을 깨끗하게 수리하면서부터 김해 출신 작가의 그림 위주로 고서화를 수집하고 있다.
주로 어떤 그림에 관심이 많은가?
김해 출신 작가들의 그림에 관심이 많다. 김해에는 서화의 맥(脈)이 있다. 차산 배전(1843~1899)을 개조(開祖)로 해, 제자인 아석 김종대(1873~1949)와 우죽 배병민(1875~1936)이 있다. 이후 아석의 맥을 이어받은 수암 암병목(1906~1985), 그다음으로 김해 문화원장을 지낸 운정 류필현(1925~2000)과 한산당 화엄선사(1925~2001)로 이어진다. 이런 분들의 문인화를 발굴하고 후대에 전하고자 한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고장 김해의 문화요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민화에도 관심이 많다.
고미술의 매력은 무엇인지?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는 겸재가 몸이 아픈 시인이자 친구인 이병연(1671~1751)에게 쾌유를 비는 마음을 담아 노년에 그려준 그림이다. 그림은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약과 같다. 옛 산수화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그림 속에서 놀고 있는 것 같다. 수려한 산수의 가운데 놓인 너럭바위 위에서 낮잠을 즐기고, 강 위에 떠 있는 배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먼 산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기도 한다. 오래 보아야 하고 그림에 동화돼야 한다.
아끼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면?
아끼는 작품은 김해 출신 문인 화가들의 작품이다. 그중에서 아석 김종대의 십 폭 매화 병풍이다. 탈속한 필치로 그린 묵매는 작가의 내면세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매화의 가지가 용트림하듯 하고 추위를 이겨내는 기세가 범상하여 시대정신을 담은 것 같다.
8년 전쯤에 인연으로 만난 그림이 있다. 그 당시 부산 구덕운동장 주변에는 주말마다 문화장터가 열렸다. 어느 날 아침 딸아이를 국가 자격시험장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문화장터에 들렀다.
난장 한쪽에 버려지다시피 한 액자를 하나 발견했다. 액자는 청제 성권영(1924~1992) 시인의 시를 우죽 양진니(1928~2018) 서예가가 붓글씨로 쓴 조그만 작품이었다. 시인은 고향 친구의 삼촌이며 서예가는 일가친척이다. 버려지다시피 한 액자를 몇 만 원에 구입해 수리해서 보관하고 있다. 이는 내 고향 창녕 유어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퇴직 후 갤러리 운영하게 된 계기?
인제대학교 교직원으로 오랜 기간 근무했다. 직장생활에서 오는 정신적인 피폐가 힘들었다. 정신의 피폐는 결핍으로 이어지고 나를 울적하게 했다. 이를 달래기 위해 수시로 옛날 그림과 글씨 등을 수집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재직하면서 모아온 작품을 전시하고, 내가 사는 고장 김해의 문인화 문화도 알리고 싶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삶도 윤택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동기가 됐다.
그림은 주로 어떻게 수집하셨는지?
차산 배전과 아석 김종대를 알고, 김해의 문인화가를 알게 돼 자연히 그들의 그림을 찾아 모으게 됐다. 서화와 시는 불이(不二)가 아니기에 배전을 알게 되면서 배전이 사랑한 김해의 기녀 시인 지재당 강담운도 알게 됐다.
옛날 그림에는 화제가 있고 주로 한시로 쓰여 있다. 모르는 한자는 공부하며 알아가는 재미가 생기니 더 많이 모으게 된다. 그림은 주로 옥션에서 구매하고 고미술 경매장, 표구점 등 다양한 방법으로 모았다.
고미술(그림)에 대해 꿀팁을 주신다면?
그림은 좋아하면 아는 만큼 보인다. 투자하겠다는 생각은 나중 일이다. 그저 좋아서 보고 즐긴다는 의미로 그림을 접하면 좋겠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한 점 구했다면 후손에게 물려준다고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분명한 것은 좋은 그림을 보면 느낌이 온다. 느낌이 없는 그림은 멀리하길 바란다.
앞으로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계획은?
시와 수필은 곧 나 자신으로 생각하고 글을 쓴다. 모 일간지에 ‘아침 숲길’이라는 칼럼을 몇 달에 한 번꼴로 반 십 년을 써오고 있다. 이 글과 새로 쓴 수필 등을 모아 수필집을 출간할 계획을 하고 있다. 주위에서 종종 원고 청탁도 들어오고 해서 글쓰기는 놓을 수가 없다.
사회가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선한 영향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 환경을 생각하고, 범죄를 줄이고, 출산율을 높이는데 바른 생각을 하게 하는 글 등이다.
김해 갤러리는 김해시 분성로288번길 4에 위치하고 있다. 왕릉공원 앞 도로를 지나다가 시간이 나면 고서화 그림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늦봄을 즐기는 방법이다. 봄꽃도 좋지만 봄에는 역시 그림이다. 김해 문화에 깃든 그림 설명도 듣고 양 대표의 시와 수필 이야기도 듣는다면 봄이 꽉 찰 것이다.
☞우포늪이 있는 창녕 유어 진창에서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까지 창녕에서 보냈으며 커서는 부산에서 생활했다. 전역 후 출판사에서 몇 년 근무하고 1988년 말부터 2022년 중반까지 인제대학교 교직원으로 근무했다. 2006년 수필로, 2015년에 시로 등단했다. 수필집으로 '아버지의 구두', '나뭇잎 칼'이 있으며 시집으로 '아버지의 늪', '산감나무'가 있다. 원종린 수필문학 작품상, 김해문학 우수작품집상, 경상남도 문인협회 우수작품집상을 수상했다. 김해문인협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봉황동에서 김해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