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8 16:57 (토)
책으로 만나 세상 이롭게 책방이 꿈꾸는 바람이죠
책으로 만나 세상 이롭게 책방이 꿈꾸는 바람이죠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4.07 2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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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곳] 김해 '생의 한가운데'

우애와 연대의 인문 공간
동네서점은 회복의 터전
생가서 배움을 맛 본 사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독서 모임은 교학상장의 축
그림책 읽기 모임 시작 예정

박태남 대표 "우리 지역에
시민인문대학 만들고 싶어"
생의 한가운데에서 수강생들이 인문학 수업을 듣고 단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수강생들이 인문학 수업을 듣고 단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김해에 인문학의 싹이 자라고 있다. 인구에 비해서는 인문학 공부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다. 지금은 인문학의 시대다. 인문학 공부만큼 정신건강에 좋은 것은 없다. 항상 '새로운 봄'으로 세상을 볼 때 삶의 공간이 무한하게 확장되는 것이다. 알게 되면 보이게 되고 그만큼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고 싶은데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을 부르는 곳이 있다.

열정 가득한 인문 공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다. 한 개인이 인문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 수많은 학자와 시민들을 불러모아서 사유와 연대의 공간으로 자리 잡은 곳이 있다. 바로 김해시 내외동에 있는 인문 공간 '생의 한가운데'다. 지난달 23일 토요일 늦은 오후에 이곳을 찾아갔다. 박태남 대표를 만나서 동네 책방인 이곳을 둘러보고 책도 사고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도 소개받고 인문학 공기를 쐬고 왔다.

'인문공간 생의 한가운데'는 2015년에 시작했다. '생의 한가운데'는 루이제 린저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주인공 니나 부슈만의 치열하고 열정적인 삶,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마음을 흔들었다. 사십 대 초반, 스무 살에 읽었던 소설 '생의 한가운데'가 삶 속으로 다시 들어왔다. 책방으로 5년 차, 공간으로는 9년이 돼가는 '생의 한가운데'(이하 생가) 이곳에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생가 박 대표에게 인문학 공간의 설립 계기를 묻자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를 숨막히게 한 사회적 폭력, 세월호 참사에서 대면한 우리의 얼굴을 마주하며 괴로웠다. 슬픔과 분노를 넘어서기 위해 인간과 사회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컸다. 배움을 매개로 삶을 나누고, 사회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인문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고 하면서 '공간을 열기 전, 우리 지역에는 인문 공부를 깊이 있게,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동서양 고전 공부와 독서 모임, 글쓰기 강좌, 저자 초청 강의 등을 꾸준히 열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박대표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생의 한가운데 인문공간 건물 모습.
생의 한가운데 인문공간 건물 모습.

◇생가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은 달달 인문학과 생가 인문강의축제

달달 인문학은 공간을 열기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는 다양한 주제의 인문강의다. 작은도서관이나 공부방을 빌려 진행한 인문학 강좌가 밑거름이 돼 '생의 한가운데'를 시작하게 됐다. 달달 인문학이 벌써 지난해 8월에 61회 환갑이 지났다.

생가 인문강의축제는 2016년부터 일 년에 한 번, 2월 셋째 주에 2박 3일 동안 이어온 릴레이 인문강의다. 2021년 코로나로 잠시 쉬었지만 6년 동안 모두 57회의 릴레이 강의를 열었다. 이 강의는 강사들의 재능연대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졌다. 강사비도 차비도 없이 무상으로 펼친 인문 강의 에너지는 지역과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지역의 인문 정신을 높이고 생가가 지역 속에 자리 잡는 데 큰 힘이 됐다. 소낙비 강의에 젖은 사람들이 이후 생가 지킴이가 됐다.

◇동네 책방 시작, 생가 교학상장의 현장

2019년 동네 책방을 시작했다. 작가 지원사업이나 지역서점 문화활동지원사업 같은 공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코로나 시절에도 책방은 얼음 밑 물고기처럼 쉬지 않고 움직였다. 해마다 책방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는 한 권의 문집을 만든다.

생가는 김해교육청 행복교육지구 지역중심 마을 학교를 5년 동안 운영했다. 함께 공부하며 뜻을 모은 분들과 마을교육공동체를 꾸려 청소년들을 만났다. 책방이 마을교육의 거점이 돼 청소년들이 세상과 만난다. 참여한 시민들은 진행하고 응원하면서 함께 성장한다. 생가 마을 학교는 교학상장의 현장이다.

책방의 꽃은 독서 모임이다. 생가와 함께 시작한 '골목 독서회'는 우애와 환대를 실천하는 튼튼한 모임으로 성장했다. 청소년 모임 '첵첵 bc' 회원들은 우정을 경험하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간다. 달마다 길잡이가 달라지는 '시절 독서'도 반응이 좋다. 2년이 돼가는 '푸성귀' 독서모임과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엔 김해 녹색평론 독자 모임도 있다. 곧 그림책 읽기 모임을 시작할 예정이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수업을 들은 후 단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수업을 들은 후 단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세상 이롭게 만드는 책방이 꿈

이 외에도 오카리나를 배우는 '골목 오카리나', 필사 모임 '고요의 바다'도 4월부터 2기 모임을 시작한다. 1월부터 시작한 '그리스 비극전집 읽기'는 3월에 끝났고, 장자 강독은 진행 중이다.

같이 공부한 사람들이 행사 때마다 일손을 보태고 손님을 함께 맞이한다. 수시로 기부와 증여도 이뤄진다. '갈매기의 꿈'은 어른 세대가 청년 세대의 책 읽기를 응원하는 생가책방만의 프로젝트다. 책방 이용자 기부금으로 청소년과 청년에게 책값 20퍼센트 할인해준다. 좋은 책을 나누고 싶은 분은 불특정 다수에게 책을 선물한다. '만남이 꽃처럼 피어나'는 순간들이 책방을 살아있게 만든다. 이문회우(以文會友), 이우보인(以友輔仁)이라는 증자의 말처럼 책으로 만나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일, 책방이 꾸는 꿈이다.

◇동네 책방은 회복의 공간

2019년, 책방 옆 홍익공원에서 길고양이 먹이를 주는 조선족 부부가 있었다. 11월 마지막 주 추운날, 고양이가 책방 골목에 있는 지역아동센터 마루 밑에 새끼를 낳았다. 먹이를 찾으러 간 사이 대문이 닫혀 어미고양이는 밖에서 울어대고 새끼는 마룻바닥 아래 놓여있었다. 그날 화포천에서 별을 보고 돌아오는 행사를 마치고 뒤늦게 귀가하던 중 아동센터 대문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부부를 보았다. 자초지종을 듣고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줬다. 집주인은 화를 내며 경찰을 불렀고 새벽에 경찰이 왔다. 결국 문은 열리지 않았다. 훗날 조선족 부부가 새끼고양이를 꺼내어 묻어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건을 잊고 지내다가 이후에 부부가 함께 생가에서 여는 고전 강독에 참여했다. 프로그래머인 남편은 재택근무하고, 아내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남편은 한국에 아는 사람이라곤 아내 외에는 없어서 고립감으로 심한 우울감을 겪고 있었다. 책방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은 치료제가 됐다.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고, 밥 먹고 술 마시고, 차 마시는 시간이 쌓이며 슬픔이 옅어진 것이다.

오 선생님 부부는 책방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프로그래머인 남편분은 책방에서 필요한 기술적인 부분 외에도 일이 있을 때마다 책방 일을 도와준다. 기획력과 손재주가 뛰어난 아내 분은 강의 포스터를 그리고 강의차 오신 작가님의 숙식을 책임지기도 했다. 일이 있어 오 선생님이 책방에 오래 못 나오시면 사람들이 찾는다.

◇책방은 인문학의 플랫폼, 행정은 동력을 제공해야

책을 읽고 사유해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이것에 시간과 돈을 쓰지 않는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번 정부 들어서 서점에서 할 수 있는 문화활동에 대한 지원이 사라졌다. 지자체도 다르지 않다. 작가와 독자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책을 멀리하는 사람들을 책 읽기의 세계로 초대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는 계속돼야 한다. 책방은 다채로운 방식으로 초청장을 발송할 수 있는 '문자 세계의 플랫폼'이다. 좋은 플랫폼이 활발히 움직일 수 있도록 동력을 제공하는 일이 행정의 역할이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수업을 들은 후 수강생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수업을 들은 후 수강생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배움을 진정으로 맛본 이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생가는 오래전 문을 닫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공간을 열었기에 퇴로가 없었다. 생가는 내 인생에서 쏟을 수 있는 모든 에너지가 집약된 공간이다. 책방 하나로 나와 주변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경험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제 생가 문을 닫아도 괜찮다. 이곳에서 절망의 골짜기를 맛보았고 상상하던 일을 현실에서 이루는 희열도 맛봤다. 배움의 기쁨을 맛본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제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언젠가는, 어디에서든 새로운 씨앗을 뿌리리라는 확신이 든다. 배움의 진정한 맛을 본 사람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지역에 시민인문대학을 만들고 싶어, 생가의 존재 이유

우리 지역에 시민인문대학을 만들고 싶다. 동네 책방이니 책 파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게 우선이지만 공부의 장을 펴는 일도 계속하고 싶다. 같이 할 사람이 필요하다. 연대가 중요하다. 비용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부산 '상지 건축'은 상지 인문학 아카데미를 열어 지역의 인문학자들과 시민들의 인문 소양을 키운다. 김해라고 못 할 이유는 없다. 김해는 인구 53만의 도시, 도서관의 도시이며 문화도시로 선정됐다. 그러나 인문 아카데미를 지속적으로 열어갈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토양이 약하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풍요를 견인하지 못하는 시대에 인문적 소양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공동체의 안위와 연결되는 절실한 문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진정성 있는 문화를 경험한 사람들의 삶은 분명 달라진다. 이것이 바로 생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책을 읽고 사유하고 한계를 넘고 싶은 사람은 생가로 오라

책 읽기를 멀리했거나 함께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고 싶은 사람,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 거듭나고 싶은 사람들이 생가에 오길 바란다. 요즘 무슨 책이 나오나 궁금해서 슬리퍼를 끌고 책 마중 오는 분들이 많았으면 한다.

책방을 지켜가는 일은 녹록치 않다. 세상에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 일들이 많다. 리베카 솔닛은 '희망은 가장 부지런히 가꾸는 곳에서 자란다'고 한다. 바람이 불지 않아 힘껏 달려 바람을 일으켰고 몸바람개비를 돌려 여기까지 왔다. 최선을 다한 뒤 고요히 소멸하는 것, 그것 외에는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책방에 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만나고 잘 보내주는 것이다.

작가 김정운은 책을 사는 이유는 '책에 침을 묻히기 위해서' 라고 했다. 책을 사서 침을 묻히며 책장을 넘기고, 그 책을 책장에 꽂아두면서 가끔 책 제목을 보고, 그 내용을 한 번씩 떠올린다면 웬만한 명품 가방을 보는 기쁨을 뛰어넘을 것이다.

유튜브 채널 인문책방 생의 한가운데도 있다. 생가는 김해시 금관대로 1365번길 10-11에 위치하고 있다. 책 읽고 사유하고 공부하고 싶어 신열이 나는 사람은 연지공원을 한 바퀴 돌고 생가로 가면 박 대표가 환영하며 열을 내려주고 인문학의 항해를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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