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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시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
존재와 시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
  • 경남매일
  • 승인 2024.03.31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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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현대 서양철학의 중·후반기를 풍미했던 실존주의(實存主義)는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에서 비롯된다. 1950년대 프랑스와 독일에서 발흥했던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사조는 마르틴 하이데거 이후 그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의 철학자들에 의해 활짝 꽃을 피웠다.

대표적인 인물이 <말>과<구토>의 장 폴 사르트르, <지각의 현상학>의 모리스 메를 퐁티, <이방인>의 알베르 카뮈, <제2의 성>의 시몬느 드 보부아르 등이다. 잘 알다시피 장 폴 사르트르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철학자이자 문학가로 유명하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것은 그의 참여문학론의 표현으로 상을 받게 되면 아무래도 자유롭게 글을 쓰는데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실존주의는 본질이 실존에 앞서는 사물들과는 달리 인간의 경우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사상적 맥락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인간은 왜 존재하는지 그 본질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먼저 존재한다는 것이 실존주의의 기본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보다 깊은 내용은 그가 개념화한 앙가주망(engagement-생활에서 사람들이 비슷하게 행동하는 경향-에서 천착할 수 있다.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키엘 케고르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니체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중학생 때 서양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위에서 언급한 철학자들의 저작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고전은 무조건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머리를 싸매고 읽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칸트의 3대 비판서인 <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판단력이성비판>까지 읽었으니 과유불급이었다. 그래도 그때 독서한 이력이 필자 나름의 글쓰기 바탕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실존주의 철학서는 인문학에 대한 독서력의 뒷받침 없이는 완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난삽하다. 무척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 뜬구름 잡는 소리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 철학사>와 철학자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 정도라도 읽은 후 접해야 그 맥이 잡힐 것이다. 서양철학에 빠져 있던 필자가 동양철학에 눈을 뜬 것은 뒤늦게 <주역>을 접하면서부터다. 철학은 '왜'라는 물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서양철학이나 동양철학이나 그 근본사상은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최근 다시 구입해서 읽고 있다. 지금 읽어봐도 참 난해한 철학서이다. 현상학에 근거한 형이상학적 논리 전개는 <주역>의 괘·효사 만큼이나 까다롭다. <존재와 시간>은 현상학을 창시한 에드문트 후설이 펴낸 학술잡지 <철학 및 현상학 탐구연보> 제8집에 별책부록으로 출간되었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의 속지 첫 면에 '존경과 우정으로 에드문트 후설에 바친다'-1926년 4월 8일 바덴주 슈바르츠발트의 토트나우배르크에서-로 그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했다.

그는 서론 앞부분 책머리에서 '존재에 대한 물음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작업과 시간을 모든 개개의 존재에 대한 이해를 일반적으로 가능한 지평으로 해석하는 것이 이 책의 잠정적인 목표'라고 했다. 존재와 시간은 우리 인간의 실존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 의지와 방향성의 딜레마를 드러내고 있다. 그는 사람의 문법을 과학의 논리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한 노력으로 삶을 과학의 족쇄로부터 해방시키려고 했다.

그는 시간 속에서 실현되는 존재의 생기와 존재의 시간을 보았다. 이 둘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사유하며 탐구하는 것이 그의 관심사였다. 즉, '존재는 시간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모든 시대와 문화권에 유일하게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그런 존재나 존재의 논리란 없다'고 했다. 인간은 자신의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존재와 시간에 참여하여 거기에서 존재의 부름에 따라 각자 나름대로 응답할 뿐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의 다양한 의미와 그 통일적 이념을 구명하기 위해 각양각색의 존재자와 만나 그 존재자들을 체계적 구조적으로 분석했다. 그리하여 존재가 시간적으로 어떻게 인간에게 주어지며 인간이 어떻게 거기에 응답하는지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해당하는 답을 마련코자 했다.

따라서 우리는 <존재와 시간>을 존재 사건에 대한 공시적인 시각에서의 탐구라고 말할 수 있다. 번역자 이기상 박사는 하이데거가 본문에 대한 주(註)를 전혀 달지 않았기 때문에 번역상의 어려움이 컸다고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다. 하이데거가 '존재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내용 없는 개념이다'고 했듯이 존재에 대한 각 개인이 갖는 개념 또한 각양각색일 것이다.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은 시간의 노예가 되는 존재로 살거나 시간을 지배하는 존재로 살기 마련이다. 우리가 주어진 시간 속에서 과연 어떤 존재로 실재하느냐가 존재의 딜레마이다. 철학적 사유(思惟)는 역시 철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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