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6:06 (토)
대항해 시대를 연 향신료(香辛料)
대항해 시대를 연 향신료(香辛料)
  • 경남매일
  • 승인 2024.02.28 2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제홍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개발본부장
김제홍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개발본부장

향신료(香辛料, Spice)는 육류가 부패하지 않도록 저장하거나 맛을 낼 때 사용하는 재료로 15세기에는 인도나 인도네시아 말라카 제도(Maluku islands) 등에서만 생산됐다. 향신료 중에서도 인도의 후추(胡椒), 동인도 제도의 육두구(肉荳?), 말라카 제도의 정향(丁香)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있지만 중세 유럽에서 향신료는 귀족이나 소비할 수 있는 귀한 것이었다. 향신료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자 중세 유럽 국가들은 이것을 찾아 길을 나섰다. 15세기 후반 유럽 국가들의 대항해시대는 향신료를 찾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도 유럽과 아시아는 실크로드를 통해 교역을 하고 있었지만 거의 모든 교역을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들이 독점하고 있었고 향료를 사기 위해 전 유럽 무역상들은 베네치아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14세기 초, 실크로드를 보호해 주던 원(元)나라의 힘이 떨어진 틈을 타 오스만 제국이 유럽과 동방의 무역로를 차단했다. 당연히 유럽에서 향신료의 가격이 폭등했는데, 특히 육두구의 경우 원산지 가격의 600배까지 치솟았다.

육로인 실크로드가 막히자 유럽 국가들은 바닷길 개척에 나섰다. 특히 탐험정신이 강했던 포르투갈의 왕자 엔히크(Henrique)는 선박을 제작해 탐험가들을 아시아로 파견했고 마침내 1488년 바르톨로뮤 디아스(Bartolomeu Dias) 함대가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 포르투갈 함대는 희망봉을 돌아 항해를 계속했고 인도양을 거쳐 인도의 캘리컷(Calicut, 지금의 코지코드(Kozhikode))에 도착한다.

포르투갈은 총과 군대로 캘리컷 지역을 정복해 후추 무역을 독점하고, 여러 대륙을 돌며 아프리카와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까지 식민지를 만들어 포르투갈 제국을 건설했다. 포르투갈에 해상무역의 선수를 빼앗긴 스페인은 더 짧고 빠른 항로를 찾고자 했다. 이때 이탈리아 출신의 탐험가 콜럼버스는 스페인 여왕 이사벨에게 인도와의 후추 교역을 약속하며 재정적 지원을 받았고, 총 4차례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항해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향신료를 찾지 못하고 대신 매운맛을 내는 고추를 유럽으로 들여왔고 이후 고추는 포르투갈을 통해 아프리카, 인도까지 전파되었다.

정향과 육두구는 말라카 제도에 있는 테르나테(Ternate)섬과 티도레(Tidore)섬에서 유일하게 재배됐다. 포르투갈의 인도 총독은 16세기 두 섬을 점령해 동인도 향료 무역을 장악했지만, 17세기 뒤늦게 해상 무역에 뛰어든 네덜란드가 함대와 수백 명의 군인을 앞세워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두 섬을 완전히 식민지화했다. 이후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통해 향신료 무역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하지만 1770년 프랑스 외교관이 정향 묘목을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모리셔스로 밀반입했고, 모리셔스를 거쳐 아프리카 동해안을 따라 퍼져 나갔다. 육두구는 다른 지역에서 재배하기 매우 어려운 식물이었지만 당시 영국이 식민지 싱가포르와 서인도 제도로 몰래 가져와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중세 말엽부터 근세까지 향신료 무역은 대항해시대를 촉발시켜 경제를 세계화시켰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수많은 침략과 식민 지배를 겪어야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