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3 22:34 (목)
설날, 서로 상 들며 같이 낙 누려요
설날, 서로 상 들며 같이 낙 누려요
  • 하영란 기자
  • 승인 2024.02.07 2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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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삶을 묻다 6
함민복 시인의 '부부'
관계서 균형 필요 새기는 날
높이·속도 조절로 함께 행복

내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된다. 설은 음력 1월 1일, 새해 새달의 첫날이고, 한 해의 최초 명절이다. 양력으로 올해가 밝은지 시간이 꽤 지났다. 그러나 설날을 맞이해야 꼭 새해가 비로소 시작된 느낌이 든다. 새해 첫날 명절 차례를 지내기 위해 가족들이 모인다. 가족이 모이면 일단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서 음식을 만들고 차리고 설거지까지, 분주한 손길이 있어야 한다. 그저 먹고 마시고 노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누가 할 것인가의 문제로 심경이 복잡해진다. 해답은 다 같이 하는 것이지만 세상사가 답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니 명절이 되면 이것저것 생각하면 머리 아프고, 쉴 겸 해서 차례를 지내지 않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집안일로 일어날 갈등을 피하기 위해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떠나지 못하고 명절을 오롯이 맞이할 사람들은 간단한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설에 만나는 사람들 서로에게 필요한 시 한 편을 소개한다. 함민복의 시 '부부'이다. 꼭 부부가 읽어야 하는 시는 아니다.

 

부부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함민복의 시집 '말랑말랑한 힘'에서

 

무겁고 긴 상을 둘이서 들고 옮길 때, 서로에게 맞추지 않고 힘이 한쪽으로 쏠리면 마주보는 사람이 힘들다. 힘의 분배도 같이하고, 높이도 걸음도 같이해야만 원하는 자리에 놓기까지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없다.

명절 준비를 같이한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성에게 많이 치우쳐 있다. 한쪽이 일을 많이 해서 몸살이 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시간이 필요하고 대화가 필요하다. 행동이 먼저이면 좋은데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새해 첫 명절을 위해서 한쪽만 일방적으로 고생하거나 분주하다면 시작부터 마음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긴 상을 옮기는 이 시의 부부처럼 서로 걷는 속도도, 마주 보며 걷는 사람을 보면서, 보폭을 조절하며 상을 옮긴다면, 이번 명절은 마음이 푸근한 명절이 되지 않을까? 이런 일은 부부만의 일은 아니다. 명절에 만나는 수많은 관계, 자녀와 부모 사이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 시누와 올케 사이, 동서들 사이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균형이다. 균형에 이어서 배려와 긴장이 필요한 명절이다. 명절 때 관계가 힘들어서 어디로 도망갈 마음을 내려놓고 서로가 이 마음을 내보는 것은 어떨까? 그동안 서먹했던 관계도 마치 얼었던 대지가 녹듯이 녹아 서로의 마음에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관계에 봄의 기운을 만드는 마음으로 이 시를 가만히 읽어보자.

함민복 시인
함민복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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