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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릉비 탁본, 원석탁본이라는 함정
광개토태왕릉비 탁본, 원석탁본이라는 함정
  • 경남매일
  • 승인 2024.01.29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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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지난해 연말 프랑스의 유명 고등학술기관인 '콜레주 드 프랑스' 내의 아시아학회 도서관에서 광개토태왕릉비 탁본이 발견되어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이 탁본의 실물은 현재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 소재하고 있는 고구려의 광개토태왕릉비이다. 탁본은 학회 창립 2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던 중 도서관 책임 사서가 서고에 있던 두 개의 작은 상자에서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도 아시아학회의 회원이었던 에두아르 샤반느(1865~1946)가 1907년 집안에서 가져온 탁본을 소장하고 있어 이제 프랑스는 두 부의 광개토태왕릉비 탁본을 소유하게 되었다. 아무튼 우리 민족과 관련한 유물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어 학계와 여기에 관심이 많은 국민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일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비석이 전해오지만 이 비석만큼 역사적 논쟁에 휘말린 유물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1876년 이 비가 발견된 이래 150여 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비문의 내용을 두고 한·중·일 삼국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기 때문이며, 주요 쟁점은 비문의 내용 중 소위 <을미년조> 기사의 해석과 <경자년조> 기사에 등장하는 '임나가라'의 위치에 대한 문제이다.

기존의 비문 연구자들을 크게는 두 부류인데 비문이 변조됐다는 측과 변조되지 않았다는 측으로 나뉜다. 일제에 의해 변조됐다는 쪽의 주장은 <을미년조>의 신묘년 기사는 문맥이 전혀 맞지 않고 '渡海破' 부분에서 '海'자의 삼수변( )이 글을 쓰기 위해 위에서 아래로 그은 종선(縱線)을 벗어나 있다고 지적한다. 또 비의 3면 첫 행 전부와 하단 우측의 50여 글자가 지워 졌는데 이는 고구려군이 일본 열도를 침공하는 부분이어서 일제가 의도적으로 쪼아냈다는 주장을 한다. 반대로 능비가 변조되지 않았다는 측은 '문맥이 맞지 않는다'는 주장은 해석을 잘못한 것이며 초기 탁본이라는 원석탁본에서도 '渡海破'가 그대로 나오니 변조는 없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원석탁본이란 능비의 발견 이후 초기에 채탁한 탁본으로 탁본업자들이 양질의 탁본을 얻기 위해 비문에 석회를 바르기 전의 탁본을 말하며 가장 신뢰받는 탁본이다.

탁본의 종류를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쌍구가묵본>은 일제의 밀정 사카와가 일본육군 참모본부로 가져간 탁본으로 비문에 종이를 대고 글자의 윤곽을 그린 다음 여백에 먹을 칠한 것이다. <묵수곽전본>은 기존의 탁본 위에 종이를 덧대어 비춰지는 글자의 모양을 따라 선을 그린 다음 여백을 먹으로 채우는 방식이다. <석회탁본>은 글자가 새겨진 이외의 비면 부분을 고르게 하기 위해 석회를 발라 탁본하는 방식이다. <원석탁본>은 있는 그대로의 비문 상태에서 탁본을 하는 방식이다.

엄밀히 말해 <쌍구가묵본>과 <묵수곽전본>은 비에 종이를 대어 그리거나 기존의 탁본위에 종이를 대어 베끼는 방식이라 탁본이라 할 순 없다. 물론 석회탁본도 인위적인 행위는 가해졌지만 방식 자체는 탁본의 형식을 갖추었다. 그러나 탁본가의 인위적인 석회 도포로 원래 글자를 변형시킬 개연성이 있기에 그 신뢰도는 원석탁본에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탁본 방식을 기준하면 석회를 도포하기 전의 원석탁본이 가장 신뢰할 수 있다. 하지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원석 탁본도 사카와가 가져온 1884년의 쌍구가묵본을 앞서지 못한다. 사카와본은 현존하는 최고(最古)본이며 지금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다.

일본육군 참모본부는 탁본을 1884년에 입수했고 5년 후인 1889년에야 세상에 공개했는데 이때 이미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을미년조>의 기사 중 '二破'를 가획하여 '海破'로 바꾸었다. 또 어떤 글자는 글자 전체에 석회를 발라 다른 글자로 변조시켰다. 1889년 중국의 탁본 명장 이운종이 채탁한 '광서기축본'의 경우 영락 6년 병신년 기사에 '討利殘國'이 나온다. 그러나 '利'자의 원래 자는 '倭'자였고 원문은 '討倭殘國'이었다.

사실 일제는 문장의 흐름을 끊기 위해 석회를 발라 '倭'를 '利'로 변조시켰다. 변조의 증거는 '利'자가 다른 글자에 비해 가늘어 조화롭지 못하며 문맥도 맞지 않는다. 1980년대 중국의 탁본 명장 주운태가 뜬 탁본에는 이 글자가 '伐'자처럼 보인다. 왜냐면 비문에 발랐던 석회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떨어져 나가면서 '倭'자가 '伐'자로 보이지만 원래는 '倭'자가 분명했음을 이전의 칼럼(2023.7.11.)에서 언급했다. 이처럼 사카와본 뿐 아니라 원석탁본도 일부는 석회가 칠해졌고 변조된 상태에서 탁본 된 것이다. 때문에 원석탁본이라 해도 완전한 원석탁본이 아닐 가능성은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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