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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의 어원은?
동치미의 어원은?
  • 경남매일
  • 승인 2023.12.17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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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

겨울 철 대표적인 물김치를 꼽는다면 '동치미'라고 할 수가 있다.

옛날 필자가 어렸을 적 만해도 겨울철 땅속에 묻어 둔 장독을 열면 살얼음이 언 국물 댓잎을 제치면 무, 파, 곰삭은 풋고추, 청각이 들어간 '동치미'가 입맛을 다시게 했다.

속이 더부룩할 때 '동치미'국물 한 사발만 마시면 속이 시원하고 입안이 개운할 정도이다.

특히 옛날에는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면 '동치미' 국물을 마시곤 했다.

그런데 '동치미'의 어원을 순우리말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동치미의 어원은 '동침(冬沈)'으로 한자의 '변형어'다.

'동치미'는 한자로 겨울을 의미하는 동(冬)과 김치를 나타내는 침(沈)을 붙여 '겨울에 먹는 김치'라는 의미다.

1712년 북경 유람 기록인 『노가재연행일기(老稼齋燕行日記)』를 바탕으로 기술한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의 『연행일기(燕行日記)』 1권 [산천풍속총록(山川風俗總錄)]에는 동치미를 '동저'라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김창업의 『노가재연행일기』, 이해응(李海應)의 『계산기정』, 김경선의 『연원직지』 등에는 동침저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 전기 전의(典醫), 전의감 의관(典醫監醫官)을 지낸 전순의가 1459년 경에 쓴 『산가요록(山家要錄)』에서는,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 사용되는 '겨울·冬' 자가 아닌 '얼음·凍' 자를 써서 凍沈(동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책에 만드는 법이 나오는데 "겨울철 껍질 벗긴 순무를 그릇에 두었다가 꽁꽁 얼면 항아리에 담아 찬물을 붓고 입구를 막아 따뜻한 방에 두고 익기를 기다린다. 맛을 보아 먹을 만하면 수저로 떠먹을 수 있게 찢어 물에 담가 소금을 약간 넣으면 그 맛이 매우 좋다"고 하였다. 이보다 약 1세기 뒤 기록인 16세기 후기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 필사본 음식방문(飮食方文)인 『주초침저방』에 또 그로부터 다시 1세기 뒤인 1680년경(숙종) 발행된 저자미상의 음식 책인 조리서인 『요록(要錄)』에도 불과 몇 글자만 다를 뿐 동일한 동침(凍沈) 제조법이 나온다.

18세기 호남 양반가의 부인이 쓴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나마 찬자가 확실하진 않은 한글 조리서인『음식보(飮食譜)』의 '동침이'도 소금물에 담그긴 했지만 역시 얼린(凍) 무로 만들었다. 제조방법이 바뀌어 무를 얼리지 않고 만들게 된 것은 우리나라 농서로 1766년 유중림(柳重臨)이 편찬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부터이다.

명칭은 같은 동침(凍沈)으로 되어 있지만, 무를 얼리지 않고 소금물에 담가 만든 요즘의 방식 그대로이다. 얼리지 않은 무로 만든 '동침이'를 같은 18세기 책인『주찬(酒饌)』에서는 '아이·동(童)' 자로 표기하기도 했지만, 사실 '동(冬)' 자는 오이나 가지김치를 겨울에 담을 경우에도 접두사처럼 이름 앞에 붙여 왔기 때문에, 무를 얼리지 않고 '동침이'를 만들게 되면서 '얼려서 담는' 동침(凍沈) 대신에 '겨울에 담는' 동침(冬沈)이라는 명칭이 '국물 무김치'의 이름으로 완전히 굳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접미사 '이'가 붙어 동치미가 됐다. '동침'이 시간이 흐르면서 부르기 편한 '동치미'로 바뀐 것이다.

조선시대에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 1759~1824)가 1809년에 펴낸 『규합총서(閨閤叢書)』에 '동침이'로 19세기 말엽 작가미상의『시의전서(是議全書)』에 동침이(冬沈伊)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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