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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삼보
노자 도덕경 삼보
  • 경남매일
  • 승인 2023.11.19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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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무위자연설(無爲自然說)을 주장한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 67장 삼보장(三寶章)에서 자신이 평생 지녀야 할 세 가지 보배를 기술해 놓았다. '첫째가 자(慈), 둘째가 검(儉), 셋째가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이다. 자애로움으로써 용감할 수 있고, 검소함으로써 넓게 펼칠 수 있으며, 세상에 함부로 나서지 않음으로써 만물의 으뜸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깊은 철학적 함의(含意)를 내포하고 있다.

유학자 윤재근 박사(한양대 명예교수)는 삼보의 의미를 노자의 무위자연설에 입각해서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자(慈)는 사적인 친소를 따지지 않는 하늘의 도(道:이치)로서 마주하면, 사람한테만 인(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목숨에는 저마다 인이 있으니 큰 도(大道)의 자애로서 현덕(玄德:속 깊이 간직하여 드러내지 않는 덕)을 행하는 대자(大慈)를 말한다.

현덕의 자는 사람만 행하는 자애가 아니다. 상도(常道:변하지 않는 떳떳한 도리)가 만물을 낳아주고, 길러주고, 자라게 하고, 키워주고, 영글게 하고, 보양해 주고, 보호해 줌을 말한다. 검(儉)은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검박(儉薄:검소하고 소박함)함이다. 사람을 제외한 모든 목숨은 자연대로 살아감으로 검박하다. 그러나 인간은 탐욕스럽고 사치할 뿐이다. 사람에게 과도한 욕심 없이 자연이 허락하는 삶에 자족하면 검이 새삼스럽게 보배가 될 리가 없다. 저마다 부귀영화의 탐욕 탓에 인간은 쉼 없이 서로 싸우고 남을 해치며 사치하고자 검소함을 내팽개친다.

불감위천하선이란 겸양으로 다투지 않음이다. 감히 세상에 함부로 나서서 앞서지 않으면 스스로 후회가 따르지 않는 법이다. 뒤지면 뒤진다고 버둥대는 사람은 서로 싸우기를 일삼으니 궁극에는 반드시 패하게 된다. 앞서려고 하면 끌어내리지만 뒤지려고 하면 앞에서 끌어 주는 것이 세상 이치다. 겸양하여 뒤로 물러서면 세상이 자신을 앞서게 해서 선한 사람을 믿고 따른다. 그러나 갑남을녀는 믿지 못해 감히 앞서려고 설치다가 스스로 위험에 빠져버린다. 따라서 '불감위천하선'이란 보배도 대자(大慈)와 대검(大儉) 없이는 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공자 왈 맹자 왈'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금과옥조(金科玉條)의 교훈적인 말이다.

광속도로 급변하는 시대를 맞아 세대별로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세상 흐름에 어떻게 잘 대처해 나가야 할지 적응성의 위기감을 무시로 느낀다. 특히 한국처럼 시대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라는 우리 국민은 물론이고 외국인들조차 이상한 엘리스의 나라처럼 신기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작년에 와서 본 한국과 올해 와서 본 한국은 딴 세상처럼 돌변해 있기 때문이다. IT 강국답게 뭔가 빨리빨리 새로운 것을 시험해 현실에 적용해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국민성 때문일 것이다.

변화를 좇아가는 마음은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다. 뭔가 남에게 뒤처질 것 같은 조바심으로 전전긍긍한다. 유행은 또 다른 새로운 유행을 낳고, 싫증난 유행에 다시 지난 유행을 반복하는 복고풍의 레트로와 뉴트로현상이 복잡하게 공존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이제 현금은 사금고나 은행금고 속에서 명목상의 가치만 유지한 채 쌓여있을 뿐, 상품교환수단인 화폐는 플라스틱 카드나 스마트 폰 앱으로 대체되었다.

이처럼 시대변화의 메가트렌드(mega trend:거대한 흐름)에 직면한 우리들은 이상과 현실의 충돌로 빚어진 부조리한 현상의 극복이라는 난제에 봉착해 있다. 노자 도덕경의 삼보(三寶)는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상식적인 도덕률이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세상인심은 흉흉해지고 비이성적인 행태가 난무한다.

결국 가치관의 붕괴로 아노미 현상이 사회 전반에 만연된다. 천륜의 근본이 무너진 패륜은 이미 그 도를 넘어 일상사가 되었다. 인륜을 저버리고 서민들을 등치는 사기범들은 법을 비웃으며 활개 치고 있다. 그들은 정직하게 일해서 삶을 유지하기보다 비열하고 파렴치한 술수로 남을 속여 얻은 재물로 편하게 살 궁리만 한다.

한국 정치는 금도를 넘어 최악으로 치달아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무관심은 임계점에 달한 느낌이 든다. 타협 없는 끝없는 정쟁에 몸서리치며 도리질한다. '자와 검과 불감위천하선'이 부재한 한국 정치판은 저들만의 권력 쟁패전일 뿐이다. 세상이 급변했는데도 인간의 의식세계는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겸손과 양보가 미덕이 아닌 어리석음으로 폄하되는 사회는 난장판이나 다름없다.

내가 남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은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것과 같다. 자기 불신은 현실도피와 일탈행위로 이어지고, 충족되지 못한 상실된 자아는 미아 상태로 방황한다. 이는 자살률 OECD 1위라는 불명예가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시로 부닥치는 삶의 가치추구방식에 대한 딜레마는 양적으로 얼마나 잘 살아야 하고, 질적으로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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