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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27 안라인수병의 해석
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27 안라인수병의 해석
  • 경남매일
  • 승인 2023.10.2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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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정사 주지·(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여여정사 주지·(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인 1934년 경주시 현곡면에서 자그마한 비가 하나 발견되었다. 이후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으로 불린 이 비석은 6세~9세기경에 두 명의 화랑이 맹세한 내용을 돌에 새긴 것으로, 역사학계뿐 아니라 국문학계에서도 매우 중요한 유물로 인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고대의 석비는 모두 한자로 쓰여 있고 주어+술어+목적어의 한문식 어순이다. 그런데 임신서기석은 주어+목적어+술어 순의 완전한 우리식 어순이며 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하늘 앞에 맹세한다.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의 도를 잡아 지키고 허물이 없기를 맹세한다"(天前誓 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와 같이 완벽한 우리말 어순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임신서기석보다 수백 년 전에 세워진 광개토태왕릉비에도 우리말 어순으로 기록된 것이 여러 곳에서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능비 <경자년조>에는 고구려군이 왜의 근거지를 점령한 내용 이후 '安羅人戌兵'이 나온다. 이를 해석하면 <첫 번째> "안라인(安羅人)으로 국경을 지키게(戍兵) 했다"라는 해석은 가능성이 희박하다. 왜냐면 안라(安羅)라는 지명이 우리 역사서에는 등장하지 않고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 10국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함안의 옛 이름인 아라와 아라가야를 안라(安羅)와 같다고 하나 문헌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삼국사기』에는 함안을 아시량국(阿尸良國) 또는 아나가야(阿那加耶)라고 했지 안라로 지칭한 적은 없다. 다만 일제강점기, 정한론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일제는 일본열도에 있는 지명을 한반도 내에 비정하는 역사공작을 자행했다. 하지만 안라와 아라가야가 별개인 것은 그 멸망 시기가 전혀 다르다는 데 있다. 그 근거로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안라는 서기 561년에 멸망하는데 반해, 아라가야는 법흥왕 25년인 538년에 망했다고 『동국통감』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서기』에는 임나가 215회나 나오고 임나 10국에 안라가 속해 있으므로 안라의 위치는 당연히 일본열도에 있어야 한다. 때문에 임나 10국이 있는 열도의 안라 병사들로 하여금 고구려가 점령한 임나가라를 지키게 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安羅人戌兵'에서 '安羅'를 독립된 명사로 볼 때 도저히 당시의 상황과 맞지 않는 한계가 있다.

<두 번째> '安'을 '편안하게 하다'로 보고 '羅'를 신라로 보아 "신라인으로 지켜(수자리) 편안하게 하였다"라고 해석한다. 이는 중국 사학자 왕건군의 해석으로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왜냐면 서기 400년 전후의 신라는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하였고 고구려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시기였다. 실성마립간과 눌지마립간까지 고구려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는 정황들이 기록을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경자년, 신라는 왜의 침입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았을 때 고구려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고구려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임나가라를 쳤고 그 자리에는 신라군을 배치해 수비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구려군은 그 위세를 보아서도 전장의 최전선에서 싸울 군대이지 국경이나 지킬 군대가 아니라고 능비는 말하고 있다. <세 번째>는 필자의 주장으로 '安'을 '이에'라는 관계부사로 보아 "이에(安) 신라인(羅人)으로 지키게(戌兵) 했다"로 해석한다. 그 이유는 '安羅人戌兵'의 앞 구절인 <경자년조> 기록 "왜의 배후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에 이르렀고, 쫓아가 성을 치니 성은 곧 항복하였다"는 문맥과 당시의 정황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고구려군은 임나가라까지 갔고 왜의 근거지인 성을 쳐 그들의 항복을 받았다. 그리고는 '이에' 함께 출병했던 '신라 군사로 하여금' 그곳을 '지키게 하였던' 것이다.

'安羅人戌兵'에서 '安'은 앞의 내용을 수식하는 관계부사로 "이에 신라인으로 지키게 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문장에서 자연스럽다. 물론 '安'을 '편안하게 하다'로 해석할 수 있으나 뒤의 羅人戌兵 즉 "신라인으로 변방을 지키게 하였다"라는 문장과 연결하면 뭔가 어색하다. 또 뒤에 바로 나오는 '拔新羅城晨城'의 긴장감있는 문장이 따라오는 것으로 보아 '安'을 '편안하게 하다'로 해석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때문에 '安'은 앞의 내용을 설명해 주는 '이에' 즉 '이러하여'라는 관계부사로 보아야 한다.

'安羅人戌兵'은 임신서기석의 우리말 어순처럼 "이에(安) 신라인으로(羅人) 지키게 했다(戍兵)"라고 풀면 가장 자연스러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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