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3 21:23 (토)
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24 한반도 임나의 근거
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24 한반도 임나의 근거
  • 경남매일
  • 승인 2023.09.25 21: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여정사 주지·(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여여정사 주지·(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많은 사람을 불행으로 내모는 전쟁이란 다수의 찬성이 아니라 힘을 가진 독재자나 소수의 권력 집단이 언제든 일으킬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최근 전쟁의 형태는 무력의 충돌뿐 아니라 무역을 통한 경제 전쟁·스포츠와 문화를 통한 격렬한 공방도 전쟁에 비유하며, 역사의 해석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을 <역사전쟁>이라 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와 일본이 역사를 두고 충돌하는 대표적인 지점이 임나의 위치이기에 그 진실이 풀리지 않고는 서로 화해하기 쉽진 않다.

과거 일제는 한반도를 정복하기 위해 『일본서기』 <신공황후조>의 기록을 근거로 가공의 임나일본부설을 만들고 임나의 위치를 김해의 금관국이나 고령의 대가야로 확정했다. 이후 '임나는 가야다'라는 <임나가야설>을 지지하는 한·일의 학자들이 상투적으로 제시하는 근거는 「광개토태왕릉비」에 나오는 '임나가라'와 『삼국사기』 <강수열전>에 나오는 '임나가량' 그리고 「진경대사탑비」에 보이는 '임나왕족'의 기록이다. 우리 기록에는 단 세 곳에 나타나지만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에는 무려 215회가 등장한다. 이처럼 한 권의 문헌에서만 임나가 이렇게 많이 등장한다는 의미는 임나가 일본의 역사이고 그곳에 있는 지명이지 한반도 내의 어느 지점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상식으로 봐도 교통과 통신 그리고 정보가 부족한 고대에 다른 나라의 역사를 자국 역사서에 대거 기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별히 기록을 해야 한다면 따로 이름 붙여 기록해야겠지만, 자국의 역사도 다 기록하지 못하는데 뭣 하러 200여 회나 남의 역사까지 기록하겠는가. 일본 와카야마현에는 지금도 임나 4현의 하나인 모루가 그대로 있다. 또 그 주변에는 모루뿐 아니라 과거 임나 4현에 속했던 사타, 상차리, 하차리가 있었다는 문헌 기록까지 있다. 그런데도 가야사 주류 사학계는 임나가 한반도에 있다고 우긴다. 이는 진실을 추구하는 학문의 세계에선 있을 수 없는 '역사사기'라 할 것이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그 많은 임나는 일본에서 찾으면 간단하다. 그런데 일본서기의 그 많은 기록들을 한마디 언급도 않고, 마치 도둑처럼 몰래 이 땅에 확정하려는 저들의 저의는 불 보듯 뻔하다. 우리 역사를 뺏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학자가 아닌 우리나라 사학자가 그러한 역사왜곡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실력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일본에 매수된 것인가? 임나의 위치는 풀리지 않는 고도의 수학 문제 같은 것이 아니다. 세뇌만 되어 있지 않다면 상식의 눈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이젠 제발 사학자란 이름으로 우리 역사를 오염시키지 말길 바란다.

원래 <강수열전>과 「진경대사탑비」에 기록된 임나 기사는 강수의 본관이 어디인지와 진경대사의 선조인 초발성지의 출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최근 민족 사학자 이완영 선생의 연구 성과를 참고하면 강수는 월성(경주) 석 씨의 18대손으로 그 시조는 신라 4대 왕인 석탈해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석탈해의 출신지가 다파나국이나 용성국으로 나오는데 이들 지명은 국내가 아닌 다른 나라로 유추된다. 진경대사탑비에 등장하는 진경대사의 선조 역시 국내 출신이 아닌 열도 출신이다. 왜냐면 그의 선조 초발성지는 김유신 장군에게 귀순해 온 이후 신김씨(新金氏) 성을 하사받은 것으로 여겨지는데, 탑비에 "대사의 이름은 심희요, 속성은 신김씨이며 그 선조는 임나왕족 초발성지인데, 매번 주변국 병사들에게 괴로움을 받다가 우리나라의 먼 조상 흥무대왕에게 투항하였다"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광개토태왕릉비의 <신묘년조> 기사를 보더라도 임나가라를 임나일본부와 연결할 소지가 없다. 왜냐면 비문의 기사처럼 '임나가라'라는 지역은 왜가 정벌했던 땅이 아니고, 오히려 왜가 도망갈 때 고구려가 쫓아간 곳이기 때문이다. 정벌도 아닌 쫓겨간 땅으로 임나일본부의 근거를 삼았다는 것은 일제강점기에나 통할 논리다. 하지만 지금도 가야사 주류 학자들은 "임나일본부는 없지만, 임나는 가야가 맞다"라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다.

임나의 등장 횟수가 3대 215인데도 임나는 한반도에 있었고, 대마도나 일본열도에 있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며, 고구려군이 바다를 건너 왜를 친다는 것은 '과대한 국수주의의 발로'라고 말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당시 후진적인 왜는 항해술이 뛰어나 현해탄을 건너 마음대로 이 땅을 노략질할 수 있었는데, 당대 최고의 육군과 수군을 거느린 고구려군이 현해탄을 건너는 것은 불가능했단 말인가? 저들은 최강의 고구려를 너무 얕보는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