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바다를 사이에 두긴 했지만 그리 먼 거리가 아니며 언어와 유전적 계통으로 보아도 하나에서 나누어진 둘이다. 그러나 두 나라가 역사라는 주제로 돌아오면 조금도 양보할 수 없는 숙명의 라이벌이 되어 멀어진다. 물론 지금도 한·일 양국은 정치·경제·문화 등의 많은 부분에서 서로 협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일본을 이끌어 가는 소수의 위험한 생각을 가진 극우 세력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한반도 점령의 야욕을 버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근원에 대한 향수와 함께 어쩔 수 없이 한반도에서 밀려났다는 일종의 한이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대를 이어 유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의 역사적 갈등은 독도와 위안부 문제 그리고 간토학살과 우키시마호 폭침 같은 근현대사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 뿌리는 정한론의 근거로서 임나일본부가 등장하는 고대사 영역이다. 임나일본부의 핵심은 시간과 공간에 관한 것으로 고대 야마토 왜가 서기 369년부터 562년까지 200여 년간 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두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고 그곳이 가야지역이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의 문헌적 근거가 되는 일본 역사서 『일본서기』의 신뢰성에 대해선 일본 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왜냐면 역사서의 핵심 중 하나는 사건이 일어난 때를 말하는 기년(紀年)인데, 주갑(周甲)이라는 엉터리 개념을 도입해 적게는 1주갑인 60년에서 많게는 4주갑인 240년을 늘였다 줄였다 하기 때문이다. 역사가 고무줄도 아닌데 아무튼 일본서기는 그렇게 쓰여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멀어진 중심에는 임나문제가 있으며 임나의 진실이 풀리지 않고는 서로 화해하기 어렵다. 이제는 일부 편향된 학자들과 정치인들의 거짓 선동에 휘말리지 말고 사실 규명으로 양국 국민들이 역사의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만 상호 불필요한 소모전을 종식하고 함께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역사 본연의 가치와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다.
논란의 주제인 임나에 대한 가장 이른 기록은 『일본서기』<숭신 65년조>에 나온다. "임나는 축자국으로 2000여 리 가고, 북은 바다로 막혀있으며, 계림의 서남쪽에 있다" (任那者 去築紫國二千餘里 北阻海 以在鷄林之西南) 라고 기록한다. 학자들 간의 해석이 다소 다를 수 있음은 차치하고, 이 기록은 임나의 위치에 대한 가장 확실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서기의 편찬자들이 임나의 위치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왜냐면 편찬자들이 임나의 위치를 명확히 알았다면 "임나는 대마도다", "말로국이다" 아니면 "한반도의 가야다"라고 구체적으로 특정했을 것이다. 간단하다. 그러나 편찬자들이 임나의 위치를 명확히 몰랐기 때문에 구구한 설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역사서나 비문은 사람들에게 알지 못할 수수께끼를 내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 사실을 당대나 후대에 알리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때문에 편찬자들은 임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면서 일부러 지역을 명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몰랐기에 두리뭉실하게 기록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일본서기 편찬자들은 임나를 알고 기록했지만 시간이 흘러 후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오히려 편찬자들조차 임나의 위치를 정확히 몰랐다는 사실이다.
임나는 서기전 33년인 '숭신 65년'에 처음 등장한 이래 일본서기에서만 이백 십 수회 나오다가 효덕천황 2년인 서기 646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아마 이때쯤 임나는 멸망한 것으로 보이며, 그로부터 74년 후인 서기 720년 일본서기는 편찬된다. 임나는 멸망 후 7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에서 잊혀졌다. 냉정한 역사의 세계에서 패자가 잊혀지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때문에 일본서기 편찬자들은 몇몇 곳에서 겨우 남아있는 임나의 희미한 흔적과 "임나는 어디쯤 있었다더라"라는 정도의 세상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임나의 위치를 추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임나를 설명하자니 하나가 아닌 세 가지의 설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 역사에서 임나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를 점령하려는 정한론을 빌미로 임나는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일본이 임나에 대해 그토록 집착해 온 데에는 뚜렷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상대국의 역사를 지배하면 결국 그 나라를 점령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