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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함 절정 홍사면 입맛 다시다
구수함 절정 홍사면 입맛 다시다
  • 경남매일
  • 승인 2023.09.1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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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반만년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우리의 많은 의식주가 시대적 환경에 따라 변화를 거쳐 왔다.

특히 식생활 부문은 더욱 그렇다. 긴 생활 동안 문헌으로만 남고 이미 사라지거나 잃어버린 음식들이 적지 않다. 그 중에 하나가 홍사면이다.

마른 민물새우를 갈아 고운체에 쳐 밀가루와 섞어 반죽을 하여 가늘게 썰어 새우장국에 끓인 것이 홍사면이다. 필자가 25년 전 귀한 손님이 오면 이 홍사면을 대접하곤 했는데, 이 홍사면 맛을 본 사람들이 아직도 잊지 않고 "홍사면 맛을 볼 수 있느냐"고 묻는다. 홍사면 상(床)에 새우알로 담은 젓갈인 하란(蝦卵)이 올라간 식사. 지금 누가 그 호사스러운 맛을 볼 수 있을까? 원나라 초기 고문헌인 '거가필용'(居家必用)에 홍사면 만드는 법이 나온오는데 "날 새우[鮮蝦] 2근을 깨끗이 씻어 노그라지게 갈고, 천초(川椒) 30알, 소금 1냥, 물 5되를 한데 폭 익혀, 천초는 가려내고, 즙을 걸러 맑게 가라앉혀 메밀가루 3근 2냥, 녹두[綠豆] 1근을 반죽하여 한동안 베로 덮어 두었다가 열어 다시 반죽하여 굵기를 적당히 썰어 삶으면 그 국수가 자연 붉은색을 띠게 된다. 즙은 임의로 넣되 돼지고기를 써서는 안 된다. 이것은 풍기(風氣)를 일으킬까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나온다.

그렇지만 나는 밀가루에 마른 새우 가루를 넣고 반죽하여 칼국수를 하고 민물새우와 무를 넣고 맛 물을 만들어 끓여 먹는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의 '산림경제'(山林經濟)나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도 홍사면이 나오는데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쓴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농정가(農政家)이며 저술가인 풍석(楓石) 서유구(1764~1845) 선생은 직접 잡은 민물새우를 갈아 만든 붉은 색 면인 '홍사면'을 끓여 모친을 봉양했다고 한다.

메밀가루 대신 밀가루를 넣으면 색이 더 곱게 나온다. 그리고 구수한 맛을 더하기 위해 날콩가루를 섞기도 한다.

조선말 문장가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그의 부친 생신에 연회를 베풀었는데, 이 연회에 홍사면(紅絲麵)이 나왔음을 시(詩)로 읊었다.

"眉擢徵遐壽(미탁징하수) 긴 눈썹은 장수를 점칠 만한데. 弧懸憶舊年(호현억구년) 활 달던 먼 옛날을 그려본다네. 兒孫多俊采(아손다준채) 슬하에는 준수한 자손이 많고, 耆故集芳筵(기고집방연) 연회석엔 늙으신 벗들 모였네. 麵壓紅絲冷(면압홍사냉) 국수 뽑아 붉은 가닥 차갑고요. 瓜沈綠瓣鮮(과침록판선) 오이 담가 푸른 조각 신선하여라. 簿書妨攝養(부서방섭양) 문서 처리 섭생에 해로운 건데, 那得賦歸田(나득부귀전)어찌하면 귀전의 부를 지을꼬."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이 시(詩)를 읽어보면 오이를 고명으로 얹은 홍사면(紅絲麵)을 차게 해 먹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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