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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20 정한론과 요코이 다다나오
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20 정한론과 요코이 다다나오
  • 경남매일
  • 승인 2023.08.2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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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스님
도명스님

학문하는 사람이 진실을 추구하며 거짓과 타협하지 않는 것을 일러 <학자적 양심>이라 한다. 그러나 일본에 매수돼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이라 묘사한 논문으로 물의를 일으킨 하버드 대학의 램지어 교수나 국가 권력에 기생해 역사적 진실을 왜곡했던 과거 일제의 관학자들에게 학문적 양심이란 한낱 꿈속 이야기에 불과하다.

일본은 1592년 임진년에 고토 회복을 명분으로 이 땅을 침략했고 7년간의 전쟁 동안 우리의 선조들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들은 패퇴했지만 이후 300여 년을 기다려 다시 힘을 모았고 1910년 결국 조선의 국권을 강탈했다. 그들의 침략은 오랫동안 준비한 결과였으며 그 이론의 토대가 '삼한을 정벌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이다. 그러나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은 "일제가 침탈한 나라는 조선이었기에 정한론이 아니라 정조론(征朝論)이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정한론이라고 하는 근거는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로부터 연원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일본서기 <신공왕후 49년조>인 서기 249년, 신공왕후가 고구려·백제·신라를 굴복시켰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 기사가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삼한정복설' 또는 '남선경영론'으로 불리는 '임나일본부설'이다.

1871년 일제는 일본육군 참모본부를 창설했다. 군사기관이었지만 천황의 비호 아래 군사뿐 아니라 학문과 사상까지도 통제하며 초법적인 힘을 가진 기관이 되었다. 그들은 임나일본부를 확정하기 위해 세 가지 근거를 들었는데 그 첫 번째가 광개토태왕릉비 <신묘년조>의 '倭以辛卯年來渡海 破百殘□□新羅 以爲臣民'과 <경자년조>의 '任那加羅 從拔城'이다.

참모본부는 정한론의 이론적 토대를 세우려 했고 관학자 요코이 다다나오(橫井忠直)는 1882년 『임나고』(任那考)를 출간해 한반도 남부가 과거 신공왕후에게 점령됐던 임나였다고 역사를 왜곡했다. 그리고 7년 후인 1889년 밀정 사카와의 쌍구가묵본을 저본으로 광개토태왕릉비의 최초 해석본이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를 처음 발표한 인물 또한 요코이였다. 이것을 과연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 정한론의 문헌적인 근거가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인데 그 근거가 되는 비문의 첫 해석자가 바로 요코이 다다나오였던 것이다. 이처럼 요코이는 정한론의 대표주자로 맹활약했고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희생물이 바로 광개토태왕의 능비였다.

비문의 최초 해석문이라는 회여록 5집 『고구려고비고』의 서문 마지막에서 요코이는 "비문 가운데 우리에게 큰 관계가 있는 것은 辛卯渡海 破百殘新羅以爲臣民의 수 구절이 그것이다. 고래로 중국과 한국 사서들의 전승은 오직 우리가 변방을 도적질하고 통빙(通聘-서로 교제함)한 것으로만 적고 백제와 신라가 우리의 신민이 된 것은 적지 않았는데, 대개 나라의 치욕을 숨긴 것이다. 이 비석이 세워진 것은 세 왕조가 정립되어 있던 시기이며, 고구려인의 손에서 만들어졌으므로 다시 두 나라를 위해 숨기지 않고 당시의 사실대로 적은 것이 1600여 년 뒤에 폭로될 수 있었으므로 그 공로가 위대하다고 이를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는 자신들이 변조한 신묘년의 기사를 근거로 "고대 야마토 왜가 백제·신라·가야를 정복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고구려가 비문에 그 진실을 기록한 것은 공로가 있다"라며 너스레를 떨고 있다. 이처럼 그가 문맥도 전혀 맞지 않는 신묘년조의 변조기사를 사실이라고 우기며 세상에 억지 해석을 발표한 것은 그가 자신의 조국 일제의 충성스런 관학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 사학자들이다. 아직도 상당수는 정한론의 선봉에서 '임나가야설'을 고착하기 위해 『임나고』를 썼던 식민사학자 요코이 다다나오의 냄새나는 해석문을 신뢰하고 있다. 일제가 쳐 놓은 역사의 덫에 걸려 있다. 그래서 참모본부의 의도와 요코이의 행적을 보면서도 의심조차 못 하는 것이다.

능비는 변조되었다. 일본육군 참모본부와 그에 사주받은 식민사학자 요코이와 에오이 슈 등에 의해 교묘하게 조작되었다. 그러나 우리 학계가 이러한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면 역사적 진실은 고사하고 학문적 양심을 등진 일제의 망령에 끌려다니는 청맹과니를 면할 수 없다. 속이는 자도 나쁘지만 계속 속는 자의 문제도 적지 않다. 작금 핵 오염수 방류처럼 일본의 지도부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선 주변국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다. 양심적인 일본인도 있다. 그러나 그 뒤에서 고토회복을 꿈꾸는 광인(狂人)들이 있음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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