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비 신묘년조의 속민(屬民)과 신민(臣民)의 의미는 무엇일까? 중국에 거주하는 재야사학자 윤명부 선생은 屬은 `속`이 아니라 따르고 복종한다는 `촉`으로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 즉 `촉민`이란 고구려를 `따르는` 또는 `복종하는` 의 뜻이지 완전한 복속을 의미하는 종속된 국민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면 백제나 신라가 고구려보다 국력이 약한 것은 분명하나 주권까지 뺏긴 기록은 없다는 것이다.
민족 사학자 김덕중 선생은 속민의 뜻에 대해 "백잔과 신라는 옛터 고조선에서 함께 살았던 권속이요, 동족"이라고 보았다. 비슷한 관점으로 전북대 김병기 교수는 속민이란 "같은 민족 간의 주종 관계"라고 했다. 그러나 신민이란 "다른 민족 간의 주종 관계"라고 말한다.
한편 『삼국사기』「열전-최치원」을 보면 최치원은 "마한을 고구려"라고 하였다. 또한 『삼국지위서동이전』<변진조>에도 "진왕(辰王)은 항상 마한 사람으로서 대대로 이어 갔으며, 진왕이 스스로 왕이 되지는 못하였다"(辰王常用馬韓人作之 世世相繼 辰王不得自立爲王) 이러한 기록을 보면 신라의 전신인 진한이 고구려의 전신인 마한에게 예속되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경주 호우총(壺衧塚)에서 나온 청동 그릇인 호우로 그릇의 바닥 밑면에는 4행 4자씩 16글자로 `신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辛卯 年國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호우총은 신라 귀족의 유물이 나왔고 무덤 형태도 적석목곽분이라 신라인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고구려 광개토태왕 즉위년 신묘년이 새겨진 명문이 나왔다는 것이다. 또 태왕의 능비에 씌어진 글자체와 호우에 새겨진 글자체가 동일하다는 것이 판명되어 학계가 매우 주목하였다. 다만 능비에는 광개토경(廣開土境) 이라고 씌어진 반면 호우에는 광개토지(廣開土地)로 되어 있는데 이때 경(境)과 지(地)는 같은 의미로 쓰인다.
『삼국사기』 <실성마립간조>와 <눌지마립간조>를 보면 신라왕의 즉위에 고구려가 군사행동을 할 정도로 매우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 당시의 정황은 내정간섭을 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과거에 비추어 보더라도 고구려는 신라를 속민이라 여겼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또한 백제는 고구려의 왕자 온조가 고구려로부터 갈라져 나와 세운 나라이다. 때문에 고구려의 시각에서 보면 백제는 고구려의 둘째 왕자가 맥을 이은 서자(庶子)의 나라이고 신라는 고구려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나라일 뿐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비문에서는 백제와 신라를 한 계급 아래라는 의미로 `속민` 또는 `촉민`이라 칭했던 것이다.
또 다른 의미로, 백제와 신라는 독립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고구려가 과거 백제나 신라의 모국 또는 지배국이었다는 인식으로 인해 백제나 신라 초기에는 오늘날의 영연방 국가들처럼 여겨 속민으로 칭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황제국을 자부하는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를 제후국 정도로 낮추어 보아 신묘년조에서 보이는 것처럼 속민이란 용어와 조공에 대한 말을 꺼냈을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조공에 있어서는 반드시 지배와 피지배의 수직적인 관계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고 경제교류와 정치 또는 외교의 수단으로도 서로가 활용하기도 했다.
반면 일본 와세다 대학의 이성시 교수는 능비의 기록은 `백제와 신라가 고구려의 속민이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고구려의 업적을 부풀리기 위한 허구`라고 보았다. 또한 태왕의 업적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왜의 존재를 과장했다고도 한다. 그는 저서 『만들어진 고대』에서 "한일 연구자들의 능비연구가 역사적 사실 자체에 대한 탐구라기보다 근대 일본의 욕망과 이를 부정하려는 근대 한국의 욕망이 서로 대립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그러나 "속국이 아닌데 속국이었다"로 기록한 능비의 기록이 거짓이라는 그의 주장은 과거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관계를 모르고 하는 말이며 속민에 대한 편협한 해석에서 기인했다. 최근 일부의 국내 학자들이 이러한 그의 주장을 옹호해 능비를 고구려의 `정치선전물`이라고 까지 격하시키고 있는데 이야말로 매우 위험한 상상이다.
문제는 당대의 사실적 기록이 이들의 편협한 해석으로 인해 고구려인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있으며 능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맥이다. 그런데 이 교수는 문맥이 엉망인 신묘년조의 변조된 渡海破와 속민에 대한 편협한 인식을 근거로 능비의 소중한 윈래 가치를 폄하해선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