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의 한 갈래인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마음공부의 핵심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타파해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마음을 묶고 있는 온갖 관념에서 탈피해 정견(正見)을 갖추면 존재의 본질은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구도자가 수행 도상에서 관념을 제거해 주는 눈 밝은 스승을 만나면 헤매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하면 고생문은 이미 훤히 열려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그것은 성경과 불경 등의 원전(原典)을 통해 성현들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직접 파악해 내는 것이다. 쉽진 않지만 원문 즉, 오리지널이 주는 감흥은 강력한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방법도 권위자의 해설서가 아닌 원문(原文) 연구를 더 중시해야 진실에 한층 가까이 근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선행 연구자의 성과물은 후학들에게 약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독으로 작용할 수 있기에 냉정한 논리와 분별력이 요구된다. 때문에 선행 연구자들의 성과를 존중하되 객관적인 비판도 할 수 있어야 청출어람(靑出於藍)이 가능하다. 지난번에 이어 주요한 선행 연구자들의 해석을 살펴보자.
⑤이형구-(後.不貢因.倭寇):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 而後以辛卯年來不貢因 破百殘倭寇新羅以爲臣民 "백잔과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민으로서 조공을 바쳐왔는데, 그 후 신묘년부터 조공을 바치지 않으므로 (광개토태왕은) 백잔과 왜구와 신라를 파하여 이를 신민으로 삼았다." 그는 1986년의 저서 『광개토대왕릉비 신연구』에서 倭를 後로, 來渡海를 不貢因으로 변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제가 글자 전체를 갈아내고 변조를 할 리가 만무하다. 또한 고구려가 속민이 된 백제와 신라를 다시 쳐서 신민으로 삼는다는 논리적 모순이 있다.
⑥손영종-(渡浿破.東□):百殘新羅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渡浿破百殘 東□新羅 以爲臣民 "백잔과 신라는 옛적에는 속민이었고 그전부터 조공을 바쳐오던 것인데 (백제의 책동으로) 왜가 신묘년에 왔으므로 (고구려왕은) 패수를 건너가서 백잔을 치고 동쪽으로 신라를 (초유하여) 신민으로 삼았다" 그는 1988년 저서 『광개토왕릉비 왜 관계기사의 올바른 해석을 위하여』에서 위와 같은 주장을 했다. 그러나 이는 과도한 지문이 필요하며 왜가 침입해 왔는데 괜히 백제와 신라를 파한다는 모순이 있다.
⑦김병기-(서체오류설.入貢于):百殘新羅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入貢于 百殘東□新羅 以爲臣民 "백제와 신라는 예부터 고구려의 속민이었다. 그래서 줄곧 조공을 해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 이래로 백제와 □□ 신라에 조공을 들이기 시작하였으므로 왜를 (고구려의) 신민으로 삼았다"로 해석한다. 서체를 통해 入貢于를 渡海破로 변조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에 따르면 왜가 백제와 신라에 조공했다는 것과 고구려의 신민이 됐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⑧류승국-(帝,渡每破):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帝以辛卯年來 渡每破百殘□□新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倭殘國 "백제와 신라는 예부터 고구려의 속민이었다. 그런 연유 이래로 조공을 고구려에 바쳐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 이래로 매양 바다를 건너 백잔과 신라를 파하여 신민을 삼으려고 하므로, 6년 병신에 친히 몸소 수군을 거느리고 왜적과 잔국을 토벌하였다" 그러나 왜가 매번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를 파했다는 사실적인 근거가 부족하며 고구려가 가해자인 왜와 피해자인 백제를 모두 정벌한다는 모순이 있다.
⑨기타설-작가 김진명은 결락자를 東□으로 주장한다. 이는 탁본업자 초천부가 능비에 소똥을 발라 태우기 전 필사해 놓은 것에 따랐다. 그 이유는 결락 부분의 원래 글자였던 倭를 일제가 지웠으나 덜 지워져 남겨진 `계집女`의 아랫부분이 `동녁東`의 아랫부분과 유사해 東으로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의 연구자들 대부분은 渡海破 부분이 변조됐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문맥의 일관성과 변조의 명확한 근거를 탁본에서 증명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비문은 태왕의 업적을 진솔하게 기록했다. 원문은 주어가 누구냐를 따질 정도로 복잡한 문장이 아니었고 태왕의 업적을 담박하게 기록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악의를 가진 일제의 변조를 몰랐던 우리의 학자들은 그로 인해 오랜 시간 길을 헤매게 되었다. 진실이 드러날 때 동시에 허위가 드러난다. 명백한 진실에 입각해 비문을 해석하면 원래의 내용과 일제의 의도가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