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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와 철령위는 어디에 있었을까
위화도와 철령위는 어디에 있었을까
  • 경남매일
  • 승인 2023.06.08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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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위화도와 철령위의 실제 위치는 한반도가 아니라 만주의 요동에 있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인하대 허우범 박사가 위화도와 철령위의 실제 위치를 조사를 통해 밝혀낸 논문 <여말선초의 서북 국경선 연구>에서 밝혔다.

허 박사는 조선시대의 160건이 넘는 위화도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해 사서에 기록된 위화도의 특징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고 그 내용을 논문에 담았다. 새롭게 밝힌 위화도 위치와 함께 고려 말 우왕과 최영이 시도한 요동 정벌과 관련된 철령위의 위치도 논문에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위화도는 섬이 아닌 `강변의 땅`(江邊之地)이다. 지금은 사방이 물로 에워싼 육지만 섬이라고 여기지만 옛날에는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곳도 섬이라고 불렀다. 하회마을처럼 강물이 휘돌아 나가는 지역도 섬이라고 했다.

둘째, 위화도에는 사료에 `태조봉`이라는 산봉우리가 있고, `회군천`이라는 개천도 있다. 조선 건국의 발상지로 기념비도 세웠고 익원당이라는 건축물도 지었다. 건축물과 비석 등은 사라질 수 있지만 산봉우리는 사라질 수 없다. 압록강 위화도로 알려진 곳에는 산봉우리가 없으므로 위화도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셋째, 조선시대 최고의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위화도에는 세 개의 강줄기가 흐르는데 이는 압록강의 지류이며, 이름도 `굴포`(掘浦)라고 명시되어 있다. 위화도는 배나 뗏목이 아닌 사람들이 직접 걸어서 갈 수 있으며, 강폭은 7~80보에 불과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 위화도는 현재 한중 국경의 압록강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현재의 위화도는 사서에 기록된 내용과 전혀 맞지 않는 곳이다. 사서에 기록된 것과 달리 현재의 위화도는 강변의 땅이 아닌 강 안의 섬으로 압록강의 지류가 아닌 본류에 있으며, 땅의 모습도 퇴적층으로 이뤄진 평평한 땅으로 산봉우리는커녕 언덕도 없는 곳이다. 또한, 강폭도 넓고 연중 강물이 풍부하여 걸어서 갈 수가 없는 곳이다.

허 박사는 이런 여러 내용을 검토하고 실증적 조사를 반복했다. 다양한 교차검증을 거쳐서 현재의 `중국 요녕성 관전만족자치현 서점자`(徐店子) 지역이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임을 밝혀냈다. 이는 현재의 위화도에서 80여㎞ 북쪽에 위치한 곳이다.

또 다른 명백한 증거도 제시했다. 사료에 나오는 검동도는 위화도와 강줄기를 사이에 두고 있는 섬인데, 이곳은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을 배웅하고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을 영접했던 곳으로 검동도에는 지금도 영빈령(迎賓嶺)이라는 고개가 있다. 이처럼 서점자 지역이 위화도임을 부인할 수 없는 필요충분한 근거를 현장 답사를 통해 확보하였다. 압록강 지류가 조선의 영토로 압록강 본류가 국경선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허 박사는 새롭게 밝힌 위화도의 위치와 함께 고려 말 우왕과 최영이 시도한 요동 정벌과 관련된 철령위의 위치도 밝혀냈다. 현재 교과서에 철령은 강원도 철령으로 되어 있다. 이는 조선총독부 관변학자들이 요동에서 강원도 철령까지 70참을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17참의 오기라고 역사 사실을 조작하고 왜곡하여 반도사관에 끼워 맞추려고 한 그 폐해가 오늘날까지 답습되고 있기 때문이다.

허 박사는 사서에 기록된 70참은 명 태조가 수도를 세운 남경에서 요양까지의 참(교통거점)의 수를 말하며 따라서 철령위는 현재 만주의 심양과 개원시 사이에 위치한 `철령시`였다. 이러한 사실은 <문종실록>에 나오는 명나라 사신의 여행루트 기록과도 일치한다.

위화도와 철령위가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이유는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왜곡에서 기원한다. 일제가 한국사를 반도사관의 틀에 맞추기 위해 사료 조작과 억지 해석을 감행했던 것이다. 이번 연구로 위화도와 철령위 위치가 쓰다 소키치의 <조선역사지리> 역사부도 작성 과정에서 조작된 것임이 밝혀졌다.

대한학술원장이자 군사고고연구회장인 남창희 교수도 이성계 원정군이 요동을 항해 북진했는데 정작 분쟁의 불씨인 철령위가 강원도에 있다는 기존 학설은 일반 상식과도 어긋나고 군사학의 기초와도 모순된다고 지적한다. 1910년 쓰다와 이케우치는 철령위가 현 중국의 철령시에 있다고 본 적도 있다. 역사 사실을 알고도 반도사관에 의거한 역사조작을 한 것이다. 쓰다와 이케우치는 식민사학자 이병도의 스승이다.

강단사학계가 이런 역사 사실에 대한 반박을 학술적으로는 못 하면서 통설로서 다수설이 그렇다고 우기는 것은 식민사학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통하는 것은 식민사학 카르텔에 의한 것으로 이로 인하여 교과서가 시정되지 않는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국경선과 천리장성ㆍ강동 6주ㆍ윤관의 9성ㆍ철령위ㆍ위화도 등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를 국책사업으로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이 이어져서 통설로 되어있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서 바른 역사교육을 해야 한다.

언제 갑자기 통일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거기에 대비한 통일교육을 해야 한다. 역사주권과 영토주권을 찾는 역사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교육은 가능성 찾기라는 관점에서도 그러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식민사학 카르텔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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