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9:00 (금)
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⑨ 기록으로 본 문장의 모순
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⑨ 기록으로 본 문장의 모순
  • 도명스님
  • 승인 2023.05.2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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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 산사정담
도명 스님

최근 전라도가 들썩거린다. 알고 보니 전라도의 역사 <전라도 천년사> 때문이다. 전라도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천년을 기념하여 2018년부터 시작한 지방의 역사서인데 뜬금없이 왜의 지명이 여럿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기년(紀年)도 맞지 않는 이웃 나라 일본 역사서인 『일본서기』에 근거해 남원을 기문으로, 장수를 반파로, 해남을 침미다례로 기록했다. 또한 마한을 과하게 기록하여 결과적으로 백제의 시간과 공간을 터무니없게 축소시켰다. 이유야 어쨌든 결과는 `백제 죽이기`로 귀결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백제는 중국의 25사인 『남제서』에도 기록된 것처럼 한때 중국의 요서 지방을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전라도 천년사`에서 찬란한 백제의 역사를 축소, 왜곡시키는 행위는 마치 구한 말 임나일본부를 세우기 위해 광개토태왕릉비를 훼손한 일제의 만행과 오브랩 되고 있다.

능비는 분명히 변조됐다. 그 이유는 셋째, 백제는 결코 왜의 신민이 되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왕`조에 의하면 서기 391년인 영락 1년 신묘년부터 서기 394년인 영락 4년 갑오년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고구려는 백제와 충돌하는 기사가 나온다. 그런데 만일, 백제가 왜의 속국이 되었다면 왜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고구려와 싸우는 게 가능했겠는가. 또한 백제가 고구려와 매년 싸울 정도의 막강한 군사력을 가졌는데 아무런 근거없이 갑자기 왜의 신민이 되었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백제가 고구려에게는 신민이 되기 싫어 목숨 걸고 싸웠는데 왜의 신민이 되는 것은 기뻐서 아무 저항 없이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이처럼 왜가 백제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당시의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이유는 신묘년조 기사가 참모본부에 의해 변조됐기 때문이다.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백제가 고구려에게는 줄기차게 저항하는데 왜에겐 저항 한번 없이 나라를 넘겨주었다는 것은 변조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넷째, 신라도 서기 391년에 왜의 신민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내물이사금 38년인 서기 393년에 왜인들이 금성을 침입해 5일간 포위했다가 물러날 적에 신라군이 뒤쫓아가 독산(獨山)에서 격파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왜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고 했는데, 2년 후에 다시 침공하여 신라에게 패배했다는 것은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다.

한편, 영락 6년 병신년의 백제 정벌은 영락 5년 을미년의 일이 원인이 되었기에 일어난 사건이다. 때문에 을미년에 등장한 신묘년조 "백잔과 신라는 예부터 속민이었기에 조공을 왔다. 그런데 왜는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 백잔□□신라를 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는 이 기사는 병신년의 원인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런데 을미년의 원인과 병신년의 결과는 부자연스러우며, 선왕의 업적을 기록한 훈적비에 뜬금없이 왜가 주연(主演)으로 등장하는 황당한 이야기는 조작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2018년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가톨릭대의 기경량 교수는 장수왕이 아버지인 태왕의 공적을 높이기 위해 왜의 존재를 부풀려 기록하였다고 하나 이는 원문의 본질을 벗어난 과도한 주장이다.

일본이 잘 쓰는 전략 중 하나는 왜곡된 하나의 프레임을 만들어 상대에게 던져 놓는다. 그들이 대륙에 있는 한사군이나 패수를 반도에 묶어 놓았다. 그런데 이 덫에 걸린 사람은 한사군이나 패수를 반도에 놓고 아무리 연구를 해도 결코 진실에 접근하지 못한다. 모래를 쪄서 밥을 지을 수 없고 이미 상한 재료로 아무리 요리를 잘 해도 먹지 못하듯 잘못된 틀 자체를 벗어나지 못하면 결코 역사 왜곡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와 같이 광개토태왕릉비도 그들이 조작한 신묘년조의 `渡海破`란 잘못된 바탕 위에서 온갖 방식으로 풀이해 봐도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모순에 빠진다. 사실 고등학생 정도의 문장 이해 수준이면 문맥으로 보아 부자연스럽고 조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설마 조작했겠어?" 또는 "해석을 잘못해서 아직 못 푸는 것이야"라는 고정된 사고방식이 눈을 가려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전라도 천년사>가 `백제 죽이기`라면 가을에 발간을 앞두고 있는 <김해시사>는 `가야 죽이기`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는 `임나는 가야다`라는 `임나 가야설`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는데 위험천만한 일이다. 고대의 영토나 현대의 영토나 똑같이 중요하다. 그런데 시의 역사인 시사(市史)에 검증도 안 된 임나가 김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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