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7:03 (금)
봉하 5월 바람이 묘한 이유
봉하 5월 바람이 묘한 이유
  • 류한열 기자
  • 승인 2023.05.23 2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23일 김해 봉하마을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이 열려 노란 물결이 넘실댔다.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총집결했다. `돈 봉투`와 `김남국 코인` 등 여러 악재로 수세에 빠진 상황을 `노무현 정신`으로 타개하려는 발걸음 소리가 컸다. 지지층 결집과 반전의 계기를 모색하려 뜻이 다분히 담겨 있다. 이재명 대표는 시민들과 악수하며 "역사의 진보가 잠시 멈췄다"며 윤석열 정부를 둘러서 비판했다. 이날 봉하에 얼굴을 내민 민주당 의원은 100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한다.

경남의 정치 1번지는 단연코 김해다. 5월이 되면 노 전 대통령을 추도하기 위해 봉하 들녘은 노랗게 물든다. 봉하마을이 정치 1번지이면서 성지로 변한지는 오래다. 이때는 노무현 정신은 상한가다. "노 대통령이 강조했던 원칙과 상식이 무너졌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우려가 그를 다시 소환하는 것 같다" "겸손과 무한책임의 노무현 유산을 잃어가고 있다" 등 말에서 노무현은 살아난다. 대권의 꿈도 봉하에서 다시 피어오른다.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기리는 행위가 정신을 파는 행위가 되면 곤란하다. 정신을 팔아 이득을 얻으려는 행위는 눈 뜨고 보기 민망할 때가 많다. 정치인이 봉하마을을 찾아 추모하는 행위는 노 전 대통령이 정치인이었기에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한 정치인을 일반인으로 보면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봉하마을을 둘러싼 환경이 묘해 순수한 추모의 발걸음이 자칫 정치력을 과시하는 거드름으로 비칠 때가 있다. 봉하마을의 너럭바위가 집단지성을 모으는 단단한 반석이라고 하면 곤란하지만 그런 개연성이 높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

김해 봉하마을은 큰 인물을 기리는 날이 있어 정신적 해방구 역할을 한다. 한 인물의 뜻을 기리는 날에 많은 사람들이 모을 수 있는힘은 강제한다고 되지 않는다. 봉하를 중심축에 두고 연결되는 지성의 줄은 아름다운 정신적 소산이다. 거대한 정신을 공유하는 집단이 인류의 진화에서 승리했다. 진화에서 승리를 확인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해도 역사는 주류를 형성한 그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다. 봉하마을에서 퍼지는 강력한 정신 유대가 전국을 뒤덮을 수 있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많은 정치인들이 봉하를 찾아 노무현 정신으로 무장할 것이다. 순수한 추모의 정신에 `의도`를 하나 더 붙일 수 있다면 봉하를 찾는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개인이나 집단은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호하기 위해 묘수를 쓴다. 상황과 주변의 관계를 더 낫게 하기 위해 인격이나 지성을 포장해야 할 때가 있다. 더더욱 정치인들은 가면을 쓰고 연기를 잘해야 표를 모을 수 있다. 정치인들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의 꿈을 되새기는 행위를 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기 위한 포석을 깔았다면 가면을 더 두텁게 하려는 타락한 지성의 일면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큰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다르다. 좌우 대립의 소산이다. 현재는 프레임 전쟁으로 또 인물 평가는 좌우로 흔들린다. 해방 후 좌우충돌에서 인물의 평가는 당연히 진영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었다. 50~60대 사람들은 초등학교 때 공산당은 머리에 뿔을 단 괴물로 배웠고, 대학 시절에는 학생운동권의 이념화된 행위를 비판하기보다는 시대의 아픔을 짊어진 투사로 바라봤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언급하는 걸 보고 인물의 평가는 백팔십도로 다를 수 있다는 현장 교훈을 줬다. 김원봉은 좌익의 거두였고 남북이 서슬이 시퍼렇게 대치한 시절 간첩을 남파시키는 대장이었다. 영락없이 공산주의자인데, 당시 대통령이 입에서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올랐다.

이 시점에서 경계해야 하는 점은 봉하마을에 드리운 신화의 그림자다. 봉하에는 한 대통령의 정신이 깃들어 있고 동시에 마지막 삶의 아픔이 서려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꾸밈없는 웃음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신화는 자연스레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의도된 계산에서 꾸며지기도 한다. 신화를 만드는 주체는 요행을 바란다. 작은 행운에 기댄 행위가 모여 실제와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시간이 흘러 신화의 옷을 입는다. 나중에 노무현 정신은 없고 신화만 남는다면 봉하는 시민들의 마음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당연히 정치 1번지 자리도 내놓아야 한다.

신화를 역사로 만들려는 그들의 얼굴에는 "정치 개혁의 유업을 이루겠다" 결기가 서려 있지만 역사를 만들려다 전설로 빠지는 안타까움이 봉하 언저리에서 흘러나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