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2:42 (목)
정조 임금의 일득록
정조 임금의 일득록
  • 이광수
  • 승인 2023.05.21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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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조선 후기 정조 임금은 할아버지 영조가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한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씨조선 500년 동안 세종대왕과 함께 조선을 빛낸 위대한 성군이자 명군이었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영조의 사랑 속에 군주수업을 혹독하게 받으며 학문에 정진해 즉위 후 조선 후기 문예부흥을 이끈 불세출의 제왕이 되었다. 아버지를 비운에 보낸 아픔을 가슴에 품고 임금다운 임금이 되기 위해 인격도야와 학문연구에 힘쓰는 한편, 조선을 이끌어 갈 인재양성에 불철주야 노심초사(勞心焦思)했다. <일득록(日得錄)>은 신하들의 눈에 비친 정조의 언행을 기록한 책으로 정조 7년 규장각 직제학 정지검의 건의로 처음 시작되었다. 사관(史官)의 기록과는 별도로 신하들이 평소 보고 들었던 것을 일기처럼 기록해 두었다가 연말에 편집하여 규장각에 보관토록 했다. 정조 임금의 시가(詩歌)와 산문은 1799년(1차)과 1800년(2차)에 걸쳐 간행된 <홍재전서(弘齋全書)> 184권 100책에 수록되어 있다. <일득록> 19편은 홍재전서 1차 편찬 시 161권~178권에 등재되었다. 권161~165에 문학편, 권166~170에 정사편, 권171~173에 인물편, 권174~178에 훈어편으로 편집하여 등재되었다. 당초에는 학, 지행, 성명, 이기, 경사, 에, 악, 치도, 시문 등 21개 항목이었으나 선조 때 4편으로 통합 편집되었다.
정조 임금의 행적은 <일성록(日省錄)>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세손시절(영조36년)부터 쓰기 시작한 <일성록>은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에서 비롯되어 즉위한 뒤에는 규장각 검서관이 초고를 작성하고 각신(閣臣)이 편집해 정리한 일기체 국가기록물이다. 총 2329책의 유일 필사본이 전하여 보존되고 있다. <홍재전서>는 한나라의 역사 기록을 넘어서는 세계사적 중요성과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1년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기록의 천재인 정조 임금이 <일득록>에 남긴 어록들을 살펴보자. 성심편(省心編)에 `<일득록>은 날마다 살핀다는 뜻이다. 규장각 신하는 조석으로 대하는 사람으로 좌우의 사관과 다름없으니, 다만 사실대로 기록하여 내 마음을 경계시켜야 할 것이다. 절대로 과실을 포장하여 내 마음을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 내가 어찌 가까운 신하로 하여금 아첨하고 잘 보이려는 생각을 키우게 하겠는가` 임금의 나라시대에 군주 자신이 잘 못 하는 일이 있으면 신하들이 서슴없이 지적하여 간언하라고 했다. 개명 천지인 지금 정조의 이런 하교(下敎)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어떻게 하면 윗사람에게 잘 보여 한자리 차지할지 온갖 아첨을 떠는 후안무치한 자들이 득세하는 시대라 딴 세상얘기처럼 여겨진다. 중앙과 지자체의 장들이 낙점한 인사의 흠결을 두고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지도자가 자기비판에 솔직한 정조 임금 같은 높은 품격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정조가 탕탕평평의 기치를 높이 들고 당쟁의 병폐 척결을 위해 신하들과 소통하고,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 찾기에 골몰했는지 알 수 있다. 정조 임금의 이름은 이산이다. 설문해자와 강희자전에 산(?)자는 두 개의 볼시(示)가 병렬한 한자로 `밝게 살펴서 헤아린다`는 뜻이다. 두 번 세 번 보라는 뜻으로 <규장전운>에는 살필 성(省)으로 발음한다. 성(省)이란 `자기를 성찰하고 민생을 밝게 살펴서 헤아리다`는 뜻이 담겨있다. 정조의 호는 홍재(弘齋),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홍우일인재(弘于一人齋) 등으로 여러 개다. 자기성찰과 오랜 적폐인 당쟁을 혁파하고 경세제민(經世濟民)하여, 임금의 덕화(德化)가 만백성에게 고루 미쳐 태평성대를 구가하길 염원하는 어지(御旨)가 담겨있다.
애민편에 `대저 얻기 어려운 게 백성이고 모으기 쉬운 게 재물이다. 재물을 모으느라 백성을 흩어지게 하느니, 차라리 재물을 흩어버리고 백성을 모으는 게 낫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오직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군주가 되겠다는 말이다. 어느 선량이 자신의 직분을 망각한 채 수십억의 가상화폐에 투기해 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런데도 후안무치한 얼굴로 자기반성은커녕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는 것을 보면 우리정치인들이 자기본연의 자세로 돌아오길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다. 먹고 살만해지니 남 잘되는 게 배가 아파 온갖 모함과 유언비어로 흠집 내기에 혈안이다. 양식 있는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약자 아닌 약자들이 약자 코스프레로 서민들을 괴롭히며 제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다. 훈어편에 `인(仁)과 지(智)가 있더라도 용(勇)이 없으면 결국 그 인과 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고 했다. 군자의 기본 덕목인 지인용 삼덕을 고루 갖추어야 함을 말한다. 공자는 <논어> `자한편`에서 `지혜로운 자는 미혹하지 않고, 어진 자는 근심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자는 겁내지 않는다`고 했다. <일득록> 전편에 대한 해설(解說)은 허용된 지면상 불가하니 독자제현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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