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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영토와 국경은 어디였을까
조선시대의 영토와 국경은 어디였을까
  • 이헌동
  • 승인 2023.05.18 20:1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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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대한제국은 1897년 서상무를 서변계 관리사로 서간도 한인을 보호토록 했다. "함경북도 육진 지경 두만강 건너에 토문강이 있는데 두 강 사이 칠팔백리 토지가 당당한 대한에 속한 땅이다"(독립신문 1899.2.28) 당시 중추원도 잃은 땅에 대한 지경을 급히 정하여 보호할 것을 정부에 건의하였다. 1902년 고종황제는 이범윤을 간도관리사로 임명하고 청나라에 간도 소유권을 주장했다.

1905년 을사늑약 후 일제 통감부는 간도 용정에 통감부 간도파출소를 설치하였다. 그러다가 만주철도 부설권과 탄광채굴권을 청나라에서 얻는 조건으로 1909년 간도협약을 체결하여 간도 땅을 중국에 넘겨주었다.

그전까지 수많은 서양 고지도 100여 개에 압록강과 두만강이 조선의 국경으로 표시된 것은 없고 간도가 조선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국간도학회장인 이일걸 박사는 "세종 때 4군과 6진의 개척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이 국경선으로 확정되었다"는 주장은 `반도사관`을 만들어 내기 위한 억지논리에 불과하다고 한다. 아래의 글은 이일걸 박사의 주장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우리 국사책 대부분이 "세종이 최윤덕과 김종서 등을 파견하여 4군과 6진을 개척하여 마침내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을 확보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식민사학자 이병도의 `신수국사대관`(1959년)에 기술한 것을 바탕에 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세종이 1433년과 1437년 2차에 걸쳐 압록강 건너 지금의 중국 만주에 있는 파저강 일대의 야인을 토벌하였다는 기록을 무시하고 압록강 이남의 4군 설치만을 강조한 것이다. 4군을 개척한 것이 아니라 우리 영토에 있는 야인들을 축출한 것이다.

김종서의 6진 개척 역시 개척이 아니라 영토 수복이다. 조선 초기의 북방 경계가 세종실록지리지와 고려사 등에 두만강 700리 북쪽의 윤관이 축성한 공험진이었음을 밝히고 있는 역사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조선초 명과의 영토확정시 이 지역은 조선의 영토였다.

고려 예종 이후 고려가 여진을 정벌하고 공험진에 척경비를 세워 고려의 국경으로 한 것을 근거로 조선왕조 수립 초기 태종과 세종이 공험진 이남이 조선의 영토임을 명나라에 강력히 요구하여 국경선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식민사학자들은 이런 역사 사실을 회피하거나 무시한다.

이병도와 이기백 등의 주장은 일제 식민사학이 `타율성론`과 함께 `반도사관`을 만들기 위해 우리 영토를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으로 축소시킨 것을 따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식민사관 추종자들이 지금도 역사학계를 장악하여 이를 그대로 교육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명이 설치한 철령위의 위치는 요동의 철령으로 1910년대에 쓰다와 이께우찌도 요동의 철령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1940년대 조선사편수회 수사관인 스에마츠(末松保和)가 강원도 철령이라고 주장한 것을 따라서 지금까지 왜곡된 그대로 교육하고 있다.

공민왕은 1370년 이성계와 지용수를 시켜 동가강 유역의 우라산성과 동녕부를 점령하였으며, 고려정부는 "요양ㆍ심양지역은 원래 고려의 영토였다"고 동녕부에 통고하였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도 "요양ㆍ심양지역은 우리나라 강역이며, 백성도 우리 백성"이라며, 요양ㆍ심양 지역이 대대로 고려의 영토임을 선언하였다.

백두산정계비를 건립한 이후에도 봉황성 이동 압록강 대안 사이의 무인지대의 관할권이 계속 조선에 있었다. 봉황성의 책문은 조선시대 관리들이 청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신고하는, 오늘날 세관에 해당한다. 압록강에는 청의 선박이 떠 있지 못하고 사신의 도강은 조선 선박을 사용하였으며 도선장 관할은 조선에서 하였다.

조선시대 국경선이 압록강과 두만강이 아닌 것은 강희제가 만든 황여전람도에 근거한 수많은 서양 고지도에 그려진 조선의 경계선인 `레지선`, `당빌선`, `본느선` 등이 이를 말해준다.

`레지선`의 레지 신부는 자신의 저서에 "고조선인은 BC 2357년 치세를 시작한 요임금 때부터ㆍㆍㆍ"라고 하면서 단군시기의 고조선을 언급하고 고조선이 고대 중국의 하ㆍ상ㆍ주나라와 교류나 전쟁을 한 사실도 기록하고 있다. 단군조선을 중국사료로 역사화하였다.

특히 Du Halde의 지도 중 레지의 비망록에는 "봉황성의 동쪽에 조선국의 국경이 있다"고 하였다. 이런 지도에는 `PING-NGAN`(평안도)라는 지명이 요동을 포함하여 표기되어 있다.

1750년의 보곤디, 1794년의 윌킨스 등 수많은 서양지도에도 압록강 북의 봉황성 일대에서 두만강 위쪽 연변 일대로 이어지는 동간도 지역으로 국경 표시가 되어 있다. 특히 1924년 제작한 `로마 교황청의 조선 말 선교지도`는 북간도와 동간도 일대를 모두 한국령으로 표시하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고조선ㆍ고구려ㆍ발해사를 자기들의 역사로 조작하여 가르치고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역사로 교육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우리 역사에 사실인 것도 제대로 교육하지 않는 것일까? 식민사학 카르텔을 극복하여 역사주권과 영토주권을 찾아서 통일에 대비한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의 압록강과 두만강이 조선의 국경으로 그려진 서양 고지도는 없다. 청나라의 지도에도 간도를 조선영토로 표시하고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영토와 국경에 대한 연구를 정부에서 프로젝트로 심화연구하여 바로 알고 교육하도록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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톄링시 2023-09-16 12:23:56
고려사 ㅡ철령(鐵嶺) 이북은 원래 원조(元朝)에 속했던 것이니, 아울러 요동(遼東)에 귀속시키겠다. 그 나머지 개원(開元)·심양(瀋陽)·신주(信州) 등지의 군민(軍民)은 원래의 생업에 복귀시키도록 하라.”
초딩 ㅡ 강원도 어디에 개원 심양 있어요 ㅡ 식민사학자에게 물어봐
핸드폰으로 1분에 고려영토 2배로 늘리는법 구글에서 톄링시 검색 구글지도

재야사학자 2023-05-19 17:58:19
레지선은 예전부터 알고~ ㅎㅎ

재야사학자 2023-05-19 17:57:29
나 <레지 고조선 사료> 아는데… 유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