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18:04 (화)
스승의 날, 천사와 악마 같은 교사 이야기
스승의 날, 천사와 악마 같은 교사 이야기
  • 한승범
  • 승인 2023.05.14 2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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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범 버네이즈 아마존출판대행 대표
한승범 버네이즈 아마존출판대행 대표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스승의 날은 1965년부터 세종대왕의 탄신일인 5월 15일로 정해졌다. 그중 1991년 5월 15일은 나에게 언제나 잊혀지지 않는 날로 남아있다. 그때 나는 월곡동 생명의전화 종합사회복지관에서 목화야학을 운영하며 왕영술, 김주일, 이희진, 이강섭, 변지영, 전미경, 서완환 등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해 처음으로 받아볼 카네이션에 대한 기대감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모든 수업이 끝난 저녁 10시까지도 카네이션 한 송이를 달아주는 학생은 없었고, 그로 인한 실망감은 거센 파도처럼 느껴졌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은, 한 여학생이 "야학에서 선생님들은 항상 학생과 교사가 동등한 인격체라고 주장하는데, 왜 카네이션을 달아주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당진초, 서울 혜화초, 경신중, 서라벌고, 국민대 경제학과,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므기모) 등을 거치며, 나는 천사와 악마 같은 다양한 교사들을 만났다. 그리고 나 역시 그중 한 명으로 강단에 서서 강의를 했었다.

혜화초 서예 전공 담임선생님은 "머리에 X만 들었다"며,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모욕감을 줬다. 고등학교 때 김문섭, 연성금, 한규근, 정명순, 이응용, 변정화 선생님들이 생각난다.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패싸움을 주도한 나는 정명순 선생님의 아이스하키 스틱 풀스윙에 맞았던 기억이 있다. 그건 사랑의 매였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고3 때, 선생님이 원하는 서울대 비인기 학과 대신 연세대 인기 학과를 지원한다는 반 친구가 있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선생님이 그 학생의 누나와 학생들 앞에서 무자비하게 주먹으로 연세대 지망 학생을 폭행한 것이다.

나는 모범 학생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일진도 아니었고, 공부 못하는 열등생 수준의 문제아였다. 당연히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고, 무시와 차별을 당했다. 경험상 스승이라고 부를만한 선생님들이 많지 않았다. 어린이들의 존엄성을 짓밟는 교사, 고상한 척하며 촌지를 받던 교사, 분노조절장애로 폭력을 휘두르던 교사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 때 정경호 선생님이 있었다. 그는 주임 선생님으로서 문제아 학생들을 사랑과 체벌로 지도했다. 상상할 수 없는 비행을 저지른 B학생도 퇴학시키지 않고 졸업시켰다. 당시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특혜였다. 러시아 유학을 마치고 선생님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그는 부인과 함께 용산에 위치한 해오름빌 모자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B학생의 숨겨진 이야기를 했다. 원래 B학생은 아버지와 형과 함께 한 방에서 살았다. 그런데 형이 결혼하면서 방이 없어진 B학생은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살다가 비행청소년이 되었다. 선생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사람 답게 살 수 있다"고 말하며 B 학생을 끝까지 지켰다. 그것이 진정한 스승의 모습이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 못했던 나에게 당진초등학교의 담임 선생님이 "너는 산수를 잘하는구나"라고 말해준 것에 용기를 얻었다. 고등학교 때는 변정화 독일어 선생님을 존경해서 독일어를 좋아하고 잘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한마디, 그리고 행동 한 가지가 학생의 인생을 바꾸는 데 충분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좋은 교사가 아니었다. 선생님의 직업에 대한 열정과 신념이 있었지만, 노력이 부족했다. 학생들의 소중한 시간이 낭비된 것 같아 깊이 사과하는 마음뿐이다.

목화야학에서 보낸 일년 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이타적인 시간이었다. 내 모든 시간과 돈을 학생들을 위해 투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생들은 부유한 대학생이 돈을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야학 교사 생활을 마치고 나서 어느 날, 김동옥 학생이 찾아왔다. 매일 밥과 술을 사줬던 나에게 보답하려고 10만원 수표를 가져왔다. 그의 진심에 매우 감동하고 고마웠다. 그 후로 그는 나의 친구가 되었고, 우리는 평생 함께하고 있다. 그는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전기와 소방 관련 국가고시 자격증을 열 몇 개나 따서 훌륭한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삶은 나에게 진정한 카네이션이다.

스승의날, 전화 한 통이라도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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