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16:37 (화)
조선시대의 책문 소고
조선시대의 책문 소고
  • 이광수
  • 승인 2023.05.07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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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방담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과거제는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고유의 국가인재선발제도이다. 조선시대의 과거는 그 당시 조선의 문학, 역사, 철학을 다각도로 아울러 분석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중국이 587년에 과거제도를 도입한 후 우리나라도 고려 광종 9년(958년)에 쌍기에 의해 처음 시행되었다. 고려~조선 천년에 걸쳐 시행된 과거제도는 장점도 많았지만 폐단도 적지 않았다. 조선 말기에 문란해진 과거제도는 `난장판`이라 할 정도로 타락했다가 갑오개혁으로 폐지되었다. 고려와 조선 때 실시된 과문(科文)의 주종과목은 시(詩), 부(賦), 표(表), 책(策), 의(疑), 의(義)로 대표되는 과문육체(科文六體)였다. 따라서 10대부터 사서오경 등의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연마하지 않으면 합격할 수 없었다. 요즘 말로 하면 4~5수는 약과이고 도통지경의 선비들도 3~4수가 보통이었다. 소과(생원, 진사) 합격 후 대과문과에 수십 차례 응시해 계속 떨어지면 과거를 포기하고 낙방거사가 되었다. 양반 가문은 3대까지 과거급제자가 나오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양반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입직이 쉬운 무과로 전향해 무관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무과는 장원합격자 외는 국조방목(대과문과 급제자 명부)에도 올려주지 않을 만큼 푸대접했다. 조선시대 대과문과 급재자수는 연구자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한국역대인물고`에 의하면, 3년마다 치르는 식년시와 6가지 수시 과거까지 합하면 총 804회에 1만 5151명이 합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려운 대과문과 중시 합격자의 최종 관문인 전시(殿試: 임금 앞에서 보는 최종 순위 결정 시험)과목인 책문(策文)은 요즘으로 치면 논술시험이었다. 식년시의 경우 33명의 최종 합격자는 전시 책문의 대책에 대해 임금의 의중을 꿰뚫는 답안지를 제출해야 좋은 등급을 받았다(갑과 3인, 을과 7인, 병과 23인), 조선조 대과문과 전시에 출제된 시험문제인 책문은 917편에 이른다(한국문집총간, 책문 선집). 조선의 책문은 중국 주나라 무왕 때의 사상가인 동중서(董仲舒)의 `천인삼책`(天人三策)을 책문 구성의 전범(典範)으로 삼았다. 조선조의 시대별 전시 책문 내용은 너무 방대하여 정조의 홍재전서(弘齋全書)에 실린 78회의 책문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정조는 책문을 통해 중시 합격자들에게 국정 쇄신책과 우수한 인재등용방안 등을 물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출제되었던 책문의 폐단과 형식적인 대책을 혁파하기 위해 `책규`(策規: 책문의 규범)를 제정해 전시에 적용토록 했다. 실용적인 글쓰기를 강조한 정조는 형식에 치우쳐 자기만의 참신한 생각을 담아내지 못하는 당대의 책문 대책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특히 자신이 육성하는 인재풀인 초계문신(抄啓文臣: 규장각에 소속되어 재교육 과정을 밟던 37세 이하 젊은 문신)들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을 급선무로 여겨 구태의연한 형식적인 규식을 모두 버리고 당면 국정의 쇄신대책을 연구토록 했다. 각자 자신의 의견에 대해 중국 당나라의 소식(소동파)의 대책처럼 수십 줄의 글을 지어내게 함으로써, 책문의 체재와 내용이 틀에 박힌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실제에 유용한 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조의 책문 규정에 따라 전시 대책의 정식(程式)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먼저 책문의 시작인 허두(虛頭)는 글이나 말의 첫마디로 문제의 큰 뜻에 따라 서술하되 채점관의 주의를 끌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서두를 꺼내야 한다. 책문의 핵심을 지적하여 몇 구절을 힘차게 시작해 절실함이 구현되도록 하고, 한 편의 글에서 전하려는 뜻을 모두 담고 있어야 한다. 중두(中頭)는 중간에서 논지(論旨)를 한번 바꾸어 다른 말로 서술하는 방식으로 이 일이 중요한 이유와 긴요한 대목임을 총체적으로 논해야 한다. 축조(逐條)는 책문을 한 조목, 한 조목씩 차례대로 해석하고 검토해야 한다. 평범해서는 안 되며 옳고 그름에 대한 칭찬과 폄하(貶下)의 내용이 하나하나 폐책(弊策)을 구하는 내용과 맞아떨어져야 한다. 설폐(設弊)는 폐단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폐단의 원인이나 배경에 대한 부분을 좀 더 상세하게 구분하여 분석하고 안배해야 한다. 구폐(救弊)는 대책의 핵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책문에서 지적한 폐단의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내용은 물론 대책 해결 방안을 서술하는 문장 기술 능력을 함께 평가하는 긴요한 부분이다. 끝으로 편종(篇終)은 본론에서 미처 다 진술하지 못한 점을 보완해 기술하는 것으로 구폐(救弊)의 내용 말끝에 함축된 속뜻을 수습하여 글을 끝맺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정조가 정한 책규(策規)도 결국 일정한 답안작성 형식과 규식에 맞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명ㆍ청시대 500년 동안 지식인(과거 응시자)의 족쇄가 되었던 팔고문(八股文)과 형식상으로는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인재 등용의 객관성, 공정성, 합리성 확보는 난제 중의 난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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