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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틀 특공대와 미드웨이 해전
둘리틀 특공대와 미드웨이 해전
  • 김제홍
  • 승인 2023.05.03 2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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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태평양`이라는 이름은? 라틴어? `Mare Pacificum`(평화로운 바다)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름과 달리 이 넓은 바다는 불과 80년 전 핏빛 전장이었고 많은 병사들의 원혼이 수장된 곳이다.

지난 2019년 개봉된 영화 `미드웨이`는 태평양 전쟁의 큰 네 가지 사건(진주만 공습, 마셜-길버트 공습, 둘리틀 공급, 그리고 미드웨이 해전)을 다루고 있다. 그중 둘리틀 공습(Doolittle Raid)은 흥미 있는 작전이다.

이 공습은 지난 1942년 4월 18일, 미 육군 항공대의 제임스 해롤드 둘리틀(James H. Doolittle) 중령이 지휘하는 B-25 폭격기 편대 16기가 항공모함 CV-8 호넷(요크타운급)을 출발하여 최초로 일본 본토를 폭격한 사건으로, 별로 사이가 좋지 않던 육군과 해군의 공동작전이었다.

해군의 단발 함재기와 달리 긴 항속 능력을 가진 육군의 쌍발 폭격기들을 해군 항공모함에 적재하고 일본 본토를 폭격한다는 아이디어가 채택되자, 기존의 B-25 폭격기에 최대의 항속거리가 나오도록 불필요한 장비를 제거하고 여분의 연료 탱크를 설치했다. 출격하는 각 폭격기들은 500파운드의 폭탄 네 발씩을 장착했다.

지난 1942년 4월 18일, B-25 폭격기들은 출격한 지 6시간 만에 각기 일본 목표 상공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오전 12시 15분에 도쿄 지역을 시작으로 요코하마, 요코스카, 가와사키, 나고야, 고베, 욧카이치, 와카야마, 오사카 등 일본 각지를 폭격하였다. 둘리틀 특공대의 폭격은 사상자 363명과 가옥 262채 파괴, 제철공장 1, 석유저장소 1, 발전소 몇 동, 개장 중이던 해군 경항모 류호 우현 직격 등 일본에 피해를 입혔지만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15기의 B-25 폭격기들은 모두 일본을 벗어나 동중국해로 진입, 남동진하여 중국 절강성으로 향했다. 13시간의 장거리 비행 끝에 모두 중국 해안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나머지 1기는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에 착륙했다. 80명의 특공대원중에 69명이 미국으로 생환하였다.

비록 일본에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지만 이 공습은 일본 역사상 최초로 외국군에 본토를 공격받은 것이고 나중에 미군은 이 공습으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 투하를 했다.

이 사건으로 체면을 구긴 일본 해군의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거창한 전략을 세우는데, 미 기동함대가 다시는 접근을 못 할 만큼 초계선을 훨씬 더 미국 쪽에 가까운 미드웨이섬과 알류샨 열도(Aleutian Islands)로 동쪽으로 이동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이 충돌한 미드웨이 해전(Battle of Midway)은 지난 1942년 6월 4일부터 6월 7일까지 벌어진 태평양 전쟁의 결정적인 해전이다. 일본연합함대 사령관을 중심으로 4개의 항모, 5척의 순양함, 12척의 구축함, 함재기 264기를 보낸 대규모 미드웨이 공략 작전은 미군의 암호해독으로 모든 작전이 들통나 일본은 네 척의 항모, 257대의 함재기, 3천여 명의 병사를 잃고 전멸된다. 정예 항모 부대를 잃은 일본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수세로 돌아섰고 3년 뒤에 무조건 항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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