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7:43 (토)
`더 글로리` 속 폭력ㆍ욕망의 화두를 읽다
`더 글로리` 속 폭력ㆍ욕망의 화두를 읽다
  • 박경아 기자
  • 승인 2023.04.23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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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아 문화부 기자

믿고 보는 김은숙 작가의 첫 복수극, `더 글로리`가 38개국 인기순위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자타공인 세계 속의 K콘텐츠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으로 처절하게 짓밟힌 한 소녀의 고통과 복수를 담고 있다. 복수극의 새로운 역사를 쓴 더 글로리 속에 무엇이 있기에, 세계는 그토록 열광하는 걸까? `자칫 학교폭력 복수극`이라는 간단한 공식으로 끝날 수 있는 더 글로리를 지탱하고 있는, 인간의 욕망과 폭력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더 글로리에는 다양한 종류의 폭력이 난무한다. 가장 중심을 이루는 것은 학교폭력이지만, 톱니바퀴가 맞물린 듯 가정폭력과 성폭력, 교사 폭력, 언어폭력, 살인, 살인 교사, 청부살인 등이 얽히고설켜 온 세상이 폭력으로 뒤덮인 세계관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덮여 있던 이 `폭력`이라는 현상을 지면 위로 떠 올리며, 인간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폭력 속에 담긴 `인간의 욕망`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폭력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문동은은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친구를 보고도 침묵하며,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방관자로 살아간다. 그러나 곧 방관자는 피해자의 자리로 옮겨진다.

강현남(염혜란)의 남편은, 억눌린 욕망의 모든 분풀이를 가족에게 폭격한다. 문동은 학교 교사는 돈 많고 능력 있는 박연진(박연진)과 전재준(박성훈)의 모든 죄악에 면죄부를 주고, 그들이 2차 3차 가해자가 되는 것을 수수방관한다. 문동은의 중퇴 과정에서 행해지는 교무실의 무자비한 폭행 현장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롤렉스 시계가 말해주듯, 우리 일상의 크고 작은 폭력 속에는 물질에 대한 강렬한 소유욕이 숨어 있다. 가지지 못한 데 대한 분노가 내재한 세계는 폭력적이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을 때 `칼 구스타프 융`이 말한 인간의 그림자(shadow)가 여지없이 튀어나온다. 어둡고 사악한 인간의 양면성은 동전의 양면처럼 내면에 잠재돼 있다가, 욕망이 건드려질 때 그 끔찍한 모습을 드러낸다.

박연진과 전재준은 단지 심심해서 사람을 괴롭히고 때리고 짓밟는다. 극 중 최혜정(차주영)은 손명오(김건우)에게 자신은 비행기 일등석의 커튼을 열어젖히고, 기어코 그 안에 들어가겠다는 신분 상승의 욕망을 드러냈다.

인간 군상의 욕망은 권력에 대한 끝없는 목마름, 성적 충동, 질투에 기인해 일그러진 삶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어릴 적 인격이 형성될 시기에 배운 도덕과 공정, 평등은 그 가치를 잃고, 휴지 조각처럼 내면 어딘가에 버려진다.

그렇다면, 더 글로리를 본 세계인들은 왜 그토록 열광하는 것인가? 세계에는 이미 욕망과 폭력이 일상화돼 있다. 그럼에도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고 쉬쉬하며 아무 일도 없는 듯 지내고 있기 때문이리라. 곪을 대로 곪은 상처는 아프고 괴롭더라도 노출시키고 짜내야 한다. 더 글로리가 인간군상의 상처를 노출시키는 역할을 한 데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페르소나에 가려져 좋은 인상,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아무도 보지 않거나 누구도 탓하지 않는 권력 상황에서도 자기의 역할에만 충실할 것인가? 더 가지고 더 누릴 기회가 있는데, 이를 포기할 용기가 과연 있는가의 문제다. 김은숙 작가는 그 곪아 터지기 직전의 문제를 `더 글로리`를 통해 던지고 있다. 또 김 작가가 말하는 `폭력의 과정에서 피해자가 잃어버린 인격적 짓밟힘과 영광`은 욕망에 갇힌 이들에게 하나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용기이다. 작가는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인정하는 것과 용서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말하고 있다. 결국 더 글로리의 어떠한 가해자도 진정한 의미의 용서를 구한 이가 없고, 작가는 문동은의 손을 들어주며 복수로 갈무리했다. 한 변호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적 복수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칼럼에서 말하고 있다. 이렇듯 많은 사람의 공분과 열띤 토론을 이끌고 있는 시대의 문제작 더 글로리는 결국 `인간의 욕망과 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공론화시킨 좋은 작품이다. 오늘도 세계는 욕망에 의한 폭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속에서 사는 우리는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방관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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