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5:16 (목)
무엇이 문제인가  2
무엇이 문제인가  2
  • 박정기
  • 승인 2023.04.10 2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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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br>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그런데 지금의 취업난은 최악이라고 들었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일자리도 비례해서 없어졌다는 말인가? 세계에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나라는 일본(2006), 이탈리아(2008), 독일(2010)이다. 공부 삼아 그들의 형편을 잠깐 살펴보았다. 일본이나 이탈리아는 인구 문제로 이미 중병이 들었다. 특히 청년들 문제도 시원한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국가 전체 실업률은 13.4%인데 청년(15~25세) 실업률은 46.9%였다. 우리는 오는 2025~6년이 돼야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 그런데 지난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5년간의 청년실업률은 이미 국가 평균 실업률의 3배였다. 우리는 초고령 사회가 오기도 전에 청년실업 문제에 큰 결함을 안고 있다.

이탈리아 청년 70%는 부모한테 얹혀사는 소위 캥거루족이다. 그리고 해마다 4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떠난다고 한다. 그 소중한 인력들이 제 발로 나라를 등지고 있다니! 왜 고국을 등지나? 못 살겠으니까! 왜 못사나? 일자리가 없으니깐! 일 있고 살기 좋으면 왜 그들이 떠나겠나? 그러니까 무엇보다 일자리부터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본 청년 문제의 심각성도 이탈리아를 능가하고 있다. 일본의 청년 인구는 그전보다 3분의 1이나 줄었는데, 90년대 후반부터 고용형태는 더욱 악화돼 취업은 더 어려워지고 임금까지 줄었다. 그리고 정규직, 임시직, 일용직만 늘었다. 청년 인구가 감소하면 기회는 증가할 것으로 보았던 기대가 거기서도 완전히 무너졌다. 젊은이들의 경제활동이 이렇게 힘들어지자 의외의 사회적 부적응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예컨대 6~7만 명의 `사토리( さとり, 得道) 세대`라는 별종 세대가 탄생했는데, 이들은 직장을 구할 생각도 안 하고, 결혼 안 한다. 물론 연애도 이성 친구도 사귀지 않는다. 기껏해야 온라인 친구를 갖는 정도다. 이 친구들 생활비는 어떻게 버는가? 그들은 하루나 이틀 아르바이트로 벌어 한두 달 산다. 

그 수입에 그들 살림 꼴이 오죽하겠는가? 실제로 KBS `명견만리`에서 한 영화감독이 현지 취재한 것을 보면 2~3평짜리 좁은 방에 세 사람이 함께 침식하고, 끼니는 라면이나 김밥으로 각자가 해결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은 자신에게 정직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사토리`란 일본말로 `깨닫다`(悟)란 말이다. 그러니깐 `사토리족`이란 깨달은 사람들이란 거창한 이름이다. 내가 보기엔 거처만 길거리가 아닐 뿐, 노숙자와 다를 게 없었다. 수치(羞恥)를 가장 못 견디는 민족이 일본인이다. 옛 사무라이들은 수치를 당하면 상대를 죽이거나, 자기 배를 갈랐다. 그게 일본인들의 전통이요 미덕이었다. 그런 민족의 후예가 그런 수모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인생이 가엾다. 이런 비극이 왜 일어났는가? 인구문제는 강 건너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당장 직면하고 있는 문제다. 초고령 사회에 아직 진입하지도 않은 우리가 이탈리아나 일본이 당면하고 있는 고통과 별로 차이가 없다. 앞으로 우리가 겪을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 두 나라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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