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2 03:30 (월)
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② 변조된 당대의 기록
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② 변조된 당대의 기록
  • 도명스님
  • 승인 2023.04.10 2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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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 산사정담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 산사정담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요즘 흔히 듣는 말 중에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다"라는 말이 있다. 비근하게 표현한다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만 기록하는 자가 승리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에 실재했던 그 시대의 사실만큼 그것을 얼마나 기록하고 남겼는가에 따라 후대 역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남겨진 기록도 그것이 과연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로부터 우리 한민족은 인류 문화의 원형을 창조해냈던 뛰어난 지혜를 가진 집단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외침과 환란으로 인해 우리 민족의 장구한 역사를 증명할 수 있는 소중한 문헌과 유물들이 소실되었다. 특히 고대사에 있어선 주변국 중국의 <사기>나 일본의 <일본서기>에 비해 남아있는 문헌 사료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그 찬술 시기가 상대적으로 늦다.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기록이 비어있는 고대사 부분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는 항상 수세적 입장의 대응밖에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당대의 기록이 전무한 우리의 고대사에서 고구려인이 그 시대에 직접 남긴 이 능비의 기록이야말로 주변국의 역사 왜곡을 저지할 중요한 증거가 된다.

외침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하는 것은 무기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와 민족을 지키겠다는 굳건한 공동체 의식으로부터 출발하며, 자국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튼튼한 밑바탕이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역사야말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만드는 원천이 되므로, 만약 국민이 자기 역사를 모르면 뿌리가 없는 나라가 되어 결국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기 마련이다. 유대인이 수천 년간 전 세계로 흩어져 떠돌았던 디아스포라의 고난 속에서도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을 통해 그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언어를 지켜냈기 때문이었다.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 중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역사를 잊지 않는 민족에겐 반드시 희망찬 미래가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과거의 일이며 진부한 학문이 아니라 과거의 창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 가는 미래학이며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무기인 것이다.

우리 민족은 찬란했던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굴곡진 과거로 인해 고대사는 안팎으로 끊임없이 축소와 왜곡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주권을 빼앗겼던 일제강점기는 실로 우리 역사의 암흑기였다. 그러나 그때, 우리 민족에게 한 줄기 서광을 비추어 준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광개토태왕릉비의 발견이었다. 과거 우리 역사에서 가장 웅혼한 기상을 가진 나라가 고구려였다. 또한 우리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영웅 중의 한 명인 광개토태왕의 행적이 담긴 이 능비의 발견은 찬란했던 우리의 과거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능비는 발견된 얼마 후 역사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능비에 기록된 그 논란의 <신묘년도> 기사는 "백 잔과 신라는 옛날부터 고구려의 속민이었다.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잔□□신라를 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渡海破 百殘□□新羅 以爲臣民`(백잔신라 구시속민 유래조공 이왜이신묘년래 도해파 백잔□□신라 이위신민)이라는 내용이다.

위 기사의 내용이 중요한 이유는 이 내용의 진위 여부와 해석에 따라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를 다시 써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기사가 사실이면 야마토 왜가 4~6C까지 한반도 남부를 200여 년간 점령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비화 될 수 있다. 그래서 과거 일제는 위의 기사 중 핵심 구절은 `渡海破 百殘□□新羅` 부분으로 판단했고 비의 발견 후 변조를 감행해 능비 원래의 진실을 왜곡시켰다. 또한 여기에는 왜의 한반도 남부 침략과 함께 임나의 지명인 `任那加羅 從拔城`(임나가라 종발성)이란 구절이 등장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임나가라 종발성의 해석과 위치를 두고 그동안 한국과 일본은 치열하게 논쟁하였으며 지금까지도 그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지난 140여 년간 능비를 두고 한ㆍ중ㆍ일의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을 시도했다. 하지만 기존 해석들은 이미 변조된 능비로 인해 아무리 대단한 학자가 해석을 하더라도 문장 전체적으로 보면 문맥이 매끄럽지 못하고 뭔가 어색해 모두의 공감을 얻기 어려웠다. 능비는 원래 고구려의 것이었으나 지금은 중국의 소유가 되었고 그 해석에 있어서도 변조로 인해 현재 일본에게 주도권을 뺏기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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