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9:54 (목)
음력 윤2월 세시풍속
음력 윤2월 세시풍속
  • 이광수
  • 승인 2023.04.09 2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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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방담이광수 소설가
춘추방담이광수 소설가

금년 계묘년 음력 2월은 윤(閏)달로 양력 3월 22일부터 4월 19일까지이다. 흔히 윤달이 들면 조상의 묘를 이장하는 풍습이 고래로부터 전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좋은 게 좋다고 길(吉)하다는 날을 받아서 부모는 물론 2~3대 조상의 묘를 길지(吉地)에 이장한다. `잘되면 내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묘터가 안 좋아 후손들이 하는 일이 만사불성이라고 원망한다. 그래서 윤달이 들면 형제들이 모여서 조상묘를 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 21세기지만 우리 민족의 의식저변에 내재한 전통적인 윤달풍습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묘지를 함부로 손대는 것은 금기시해 왔다. 멧돼지가 부모님 묘지를 훼손해도 윤달이 아니면 봉분수습도 못 하게 했다. 잘못 건드려 후손들에게 액운이 미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마침 올해 음력 2월에 윤달이 들자 친족들이 묘지이장을 문의해와 지난 8일 토요일 13기나 되는 묘의 이장을 집전했다. 8일 일진(日辰)을 보니 윤2월 중 최고로 길한 날이라 하관시간까지 맞춰서 이장작업을 끝냈다. 다행히 평소 강호동양학에 관심이 많아 주역공부 틈틈이 풍수를 익힌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남의 손(풍수) 빌릴 필요 없이 문중상사(喪事)를 우리가 직접 하게 되어 다들 좋아한다. 날씨마저 청명하고 따뜻해 좋은 날을 받은 것 같아 모두 기분이 좋아 보였다. 2년 전 우리 문중 소유의 임야에 전국에 흩어져 있던 파조(派祖) 이하 300여 선조들의 묘지를 이장하여 자연장묘원을 조성했다. 이제 친족들이 편안하게 숭조경모(崇祖敬慕)하게 되었으니 후손들로서 제 할 일을 한 것 같아 다들 뿌듯해한다. 이번에 작은 규격의 와비(瓦碑)만 세워두고 이장 못 한 일부 친족들의 선대분묘를 이장한 것이다. 필자 역시 죽으면 묻힐 묘 자리를 미리 마련해 두고 나니 마음이 푸근하다. 그것도 고향의 문중 땅이니 금상첨화 아닌가. 지진이 나면 모를까 천년만년 없어지지 않고 영구할 테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윤달은 태음력의 역일(歷日)과 계절이 서로 어긋나는 것을 막기 위해 끼워 넣은 것이다. 태음력은 한 달이 양력과는 달리 29일과 30일이 번갈아 가며 오는데, 1년 12달을 날로 환산하면 354일이 되어 차이가 난다. 따라서 윤달은 이러한 날짜와 계절의 불일치를 해소하는 치윤법(置閏法)에서 나온 개념이다. 윤달의 계산은 19태양년에 7번의 윤달을 두는 `19년 7윤법`을 가장 많이 쓴다. 19태양년은 태음력 235개월이 된다. 태양력이 만 3년이 채 못 되어 윤달이 한 번씩 돌아오는 형태로 윤5월이 가장 많고, 윤4월, 윤6월, 윤2월, 윤3월, 윤7월 순으로 든다. 윤11월, 윤12월, 윤1월은 극히 드물게 든다. 금년은 윤2월이니 4번째로 갈마드는 윤달이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윤달이 들면 경기도 광주 봉은사에는 서울 장안의 여인들이 다투어 와서 불공을 드리며 돈을 탑 위에 놓는다. 윤달이 다 가도록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극락세계로 간다고 하여 사방의 노파들이 분주히 다투어 모인다. 서울과 외지의 여러 절에서도 대개 이런 풍속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옛날에는 윤달에 수의(壽衣)도 미리 짓고 관도 짜서 까맣게 옻 칠을 해 놓았다. 필자가 어릴 때 어머니가 아버지와 당신의 수의 감으로 올이 굵은 삼베를 준비해 장롱 깊숙이 보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제 장례는 전문장의사에 모두 위탁해 치르고 대부분 화장하니 삼베 수의도 필요 없는 시대가 되었다. 산에 매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화장해서 가족묘지나 문중묘지에 묻거나, 수목장, 공원묘원, 도시 근교의 아파트형납골묘원에 유골을 안치하기도 한다. 심지어 화장한 골분을 산야나 강물에 비산시키는데 이는 불법 행위이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한번 오면 한번 가는 우리네 인생살이. 생자필멸의 숙명을 그 누가 피할 수 있겠는가. `북망산천이 멀다더니 내 집 앞이 북망일세. 어흥 어으흥`. 상두꾼을 이끌고 꽹과리 치며 구슬프게 읊어대던 소리꾼의 상여소리가 아련한 추억 속에 떠오른다. 이제 탈상도 당일치기로 끝내고 삼일탈상은 옛일이 되었으니 격세지감이 든다.

윤달의 세시풍속은 묘 이장이 가장 큰 행사지만 `귀신이 없는 달`이라고 하여 아무 날이나 이사를 하고, 집수리를 해도 무탈하다고 믿는다. 음력 정월이나 2월에 윤달이 들면 장 담그기와 팥죽을 쑤어 대문 앞에 뿌리고 먹거나, 평소 탈 난다고 손대지 않던 변소수리나 지붕수선도 했다. 이런 일들은 필자가 거의 성인이 될 때까지 행해지던 윤달의 세시풍속이었다.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인 윤달풍속은 지금까지도 세시풍속으로 끈질기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니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장작업을 끝내고 귀가하는 차창 너머로 무리 지어 피어난 진달래꽃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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