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8 17:26 (목)
 바로잡아야 할 고려 국경선
 바로잡아야 할 고려 국경선
  • 이헌동
  • 승인 2023.03.30 21: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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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고려의 서북국경은 압록강에서 시작해 동으로 함경도 원산만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조선 후기 사대모화주의 유학자들 일부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가 야합하면서 기정사실화 되어 그대로 교육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중국의 지도자 모택동과 주은래는 요하라고 인식하였다.

식민사학 유풍의 역사교육으로 고려국경과 천리장성, 철령위, 윤관의 9성, 서희의 강동 6주 등이 모두 한반도에 있었다고 가르치고 배워서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아래에 언급된 연구결과 모두 지금의 중국 만주지역에 있었음이 밝혀졌다.

지금 한국사의 기본 틀이 되고 있는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사`를 번역하고 원문대조 정밀해제하는 작업을 국회와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서 인하대 고조선 연구소에서 하였다. 그 중에서 고려 국경 부분을 윤한택 박사가 담당하였다.

윤 박사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고려시대 토지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최고의 고려시대 토지전문가이다. 임창순 선생에게 한문을 사사하여 여러 한문서적을 국역한 한문의 대가이기도 하다.

윤 박사는 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일제 `반도사관`의 근거가 되었던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의 <조선역사지리> 관련 부분을 역주하면서 일제의 `반도사관` 실체를 확인하였다. 또 반도사관에 의해 <고려사>와의 연관성을 의도적으로 분리했던 <요사(遼史)>를 비롯한 중국 정사(正史), 중국과 한국의 관련 지리지(地理志), 문집, 금석문(金石文) 등 사료를 광범위하게 검토하고 비판하면서 이들을 유기적으로 종합하여 연구하였다.

연구결과 고려의 서북 국경이 압록강에서 시작해 동으로 함경도 원산만이라는 것은 `반도사관`의 원형을 제시한 쓰다의 <조선역사지리>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혔다. <조선역사지리>에 실린 `고려 서북계의 개척` 글에서 쓰다가 고려 국경을 한반도에 의도적으로 한정하였다. 

쓰다는 당시 국경을 마주하고 있던 고려와 거란의 관련 기본 사료인 <요사(遼史)>,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자료들을 서로 비교하고 대조하거나 검증하지 않고, 각각 분리하여 의도적으로 반도사관에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여 해석함으로써 이 같은 결론을 내놓았다. 쓰다의 이같은 작업은 우리 역사를 현재의 압록강(鴨綠江) 안으로 축소하려는 의도적인 시도였다. 이 같은 반도사관은 불행하게도 현재까지 우리 역사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고 있다. 쓰다는 식민사학자 이병도의 스승이다.

윤 박사는 고려의 서북 국경에는 압록강으로 불리는 강이 두 개가 있었다는 것을 사료를 통해 찾았다. <삼국유사>에 `요수는 일명 압록이고 지금은 안민강이라고 한다`는 `요수일명압록금운안민강`(遼水一名鴨淥今云安民江)이라는 기록이다. 고려 사람들은 요하를 압록강으로 부르면서 고려의 서북 국경으로 인식하고 살았다. 그것을 인식하고 기록하여 그 흔적이 <삼국유사>에 드러난 것이다. 

이것은 중국의 모택동 주석이 1958년 11월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 수상 등 북한 대표단에게 "당신들 선조는 당신들의 영토가 요하를 경계로 한다고 말했으며, 당신들은 현재 당신들의 압록강변까지 밀려서 쫓겨왔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이 역사를 기술할 때 이것을 써 넣어야 한다"고 말한 것과 일치하는 것이다.

고려 인종 1년(1123년)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송나라 서긍의 <고려도경>에 `고려의 서북국경은 거란과 연접하였는데 대요(大遼)를 경계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 `압록의 서쪽에 백랑ㆍ황암 두 강이 있는데 몇리를 가서 합류하여 남쪽으로 가는데 이것이 요수이다`는 기록도 있다. 압록강이 요수의 한 지류임을 알게한다. 

삼수변(三水邊) 록(淥)자의 압록강(鴨淥江)은 오늘날 중국 요녕성을 관통해 흐르는 요하이고, 실사변 록(綠)자의 압록강(鴨綠江)은 지금의 북한과 중국 국경선인 압록강이다. 국경선으로서의 압록강(鴨淥江)과 후방방어선으로서의 압록강(鴨綠江)이 있었던 것이다. 고려의 서북 국경선은 삼수변(三水邊) 록(淥)자의 압록강(鴨淥江) 즉 요하였다.

<고려사(高麗史)>, <요사(遼史)>, <금사(金史)>를 비교하여 논증한 결론에 따르면, 후방방어선인 압록강(鴨綠江) 아래쪽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어 왔던 강동(江東) 6주(州), 천리장성, 철령위, 서경(西京) 등이 모두 국경선 압록강(鴨淥江) 쪽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국경선 압록강(鴨?江)은 현 요하의 철령시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고 남쪽으로 흐르는 강이었다. 그래서 강의 동쪽에 있는 땅이기에 붙여진 서희의 `강동(江東) 6주`가 성립된다. 지금의 압록강은 동쪽을 지정하기 어렵고 `강남 6주`가 더 어울린다. 철령위도 함경도 안변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중국의 철령시에 있었다. 

국경선 압록강(鴨淥江)과 후방방어선 압록강(鴨綠江)이 서로 다른 강이라는 이 논증은 사료비판을 통해 얻게 된것으로 다툼의 여지조차 없는 결론이다. 자세한 것은 <압록과 고려의 북계>ㆍ<고려 국경에서 평화시대를 묻는다> 책 등에 잘 나와있다. 우선 정부에서 고려국경의 두가지 설을 모두 역사교과서에서 다루는 지침을 내리고 역사선생들이 그렇게 교육해서 고려국경을 바로 잡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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톄링시 2023-09-16 12:10:18
유튜브 ㅡㅡ핸드폰으로 고려대 2배로 만드느법 조상땅 찾기 고려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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