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6:45 (금)
존재의 본질 18 진리는 모든 곳에
존재의 본질 18 진리는 모든 곳에
  • 도명스님
  • 승인 2023.03.27 2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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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정담도명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신사정담도명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양명학의 창시자 왕수인(王守仁, 1472~1528)은 파산중적이(破山中賊易)나 파심중적난(破心中賊難)이라, "산속의 도적은 격파하기 쉬우나 마음속의 적은 격파하기 어렵다" 했다. 붓다 또한 "자기를 이기는 자는 백만의 군대를 이기는 것보다 낫다" 했다. 이러한 성현의 말씀들은 외부의 적들보다 오히려 자기 내면의 욕심과 분노 그리고 사실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극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세 가지 독(毒)인 탐진치(貪瞋痴)의 문제들도 그 근원을 쫓다 보면 자기 마음과 존재의 본질을 모르는 것, 즉 진실을 모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와 같이 진실을 모르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진실의 문제는 자기 존재의 본질뿐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역사를 망라한 우리 삶 전반에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사실이라는 진실을 알면 삶에서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으나, 누군가 진실을 호도해 잘못 알게 되면 온갖 분야에서 문제들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은 개인의 인생만이 아니라 타인과의 갈등 그리고 심해지면 국가 간의 전쟁까지도 유발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입장 바꿔 생각해 봐"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는 나의 상황만 고집하지 말고 상대의 상황도 있는 그대로 인식할 때 이해할 부분이 생긴다는 것을 말한다. 알고 보면 모든 갈등의 시작은 서로 간의 `입장차이`로부터 시작되며 그것은 동일한 현상에 대한 다른 생각이 그 원인이다. 본래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출발한 것이다. 로우리의 삶은 희로애락의 많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때때로 중요한 사건 사고를 비롯해 성공과 실패라는 여러 번의 전환을 맞이하며, 결국 늙음과 병의 과정을 거치고 죽음으로 나아간다. 생명이라는 생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생, 로, 병, 사의 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있고, 인생이라는 가치로 보면 선과 악,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현명함과 어리석음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인생을 크게 보면 이와 같지만 작게 보면 매 순간 숨 쉬고,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며, 감각하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인생이라는 큰 주제는 나날이, 매 순간, 지금 여기라는 수많은 소재들이 모여 만들어 가는 꾸러미와 같다. 흙 알갱이를 원료로 하여 도자기라는 완성품을 만들듯, 매 순간의 생명반응과 경험들이 모여 개인의 인생과 인류의 역사 그리고 진리라는 정신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눈앞에 매일 경험하는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한 이해 없이 인생의 본질과 진리라는 최고의 가치를 논하기는 어렵다.

불교에서 진리를 법(法)이라고 하는데, 이는 매 순간 경험하는 현상을 말하기도 한다. 또 일상이란 현상의 연속이기에 진리란 일상을 떠나 있지 않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현상과 함께한다. 때문에 결코 진리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또한 모든 현상은 정확한 인과의 법칙으로 발생하므로 기쁨도 진리의 나타남이고 슬픔도 진리의 나타남이다. "내 맘에 드는 현상은 사실이지만 내가 싫어하는 현상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할 수 없는데 모든 현상은 언제나 정확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역사학에서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라고 하는데 적절한 비유이다. 후대의 입장에서 보면 "그때 누구는 이랬으면, 저랬으면" 한다. 하지만 그 당시와 각자의 카르마로 보면 그렇게 될수 밖에 없는 인과의 상황이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다.

진리란 생각이라는 개인의 주관적 입장을 거치기 전의 순수한 현상을 말하고 있다. 이때 순수라고 말하니 맑고 깨끗한 어떤 상태를 연상하면 벌써 본질을 놓치고 있다. 순수란 선악이라는 생각 이전의 현상이다. 모든 현상은 인과에 의해 있는 그대로 일어난다. 다만 인간의 다양한 생각에 의해 다양한 해석과 가치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깨달음의 가치는 보석이 가공되기 전의 원석과 같으며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을 일러 `법을 본다`라고 표현했다.

근세 한국 선종의 선지식 중의 한 분이신 전강 큰스님은 깨달음을 얻고 나서 기쁜 나머지 법당 앞마당에서 오줌을 철철 눴다. 마침 그 절의 주지 스님이 "아니 이 수좌(수행하는 선승)가 어디 신성한 부처님 앞에서 불경한 짓을 하는고!"하고 놀라 소리쳤다. 그때 전강스님 왈 "부처 없는 곳을 이르시오, 그럼 내 그쪽에 오줌을 싸리다!"하고 말했다. 순간 암주는 입을 닫고 말았다고 한다. 물론 이때는 이러한 행동이 맞았지만 다른 때는 또 달라야 하리라. 현상이 늘 변하듯 진리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인과는 분명하나 모든 현상은 여여(如如)할 뿐, "봄이 오니 만산에 진달래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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