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1:40 (금)
신은 죽었는데 신을 찾는 아이러니
신은 죽었는데 신을 찾는 아이러니
  • 류한열 기자
  • 승인 2023.03.23 2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한열 경남매일 편집국장
류한열 경남매일 편집국장

"만약 우리가 우주 존재 이유를 발견하면 인간 이성은 최종 승리를 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된다." 스티븐 호킹이 쓴 `시간의 역사`의 마지막 문장이다.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2010년 미국의 물리학자 겸 작가인 리어나드 물로디노프와 함께 출간한 저서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에서 과학적 무신론의 입장을 내세워 종교계를 발끈 뒤집은 적이 있다. 호킹은 CNN 래리킹 라이브에 나와서도 "신은 존재할 수도 있지만 과학은 창조주의 도움 없이도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루게릭병을 앓은 호킹은 2018년 숨졌다.

창조와 진화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인생의 설계가 다를 수 있다. 호킹과 같이 인간 존재를 우연으로 여기는 것과, 신의 오묘한 섭리 가운데 두는 것과는 인생 가치관을 세우는 토대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어느 편에 서든 인생 근원의 문제에 착념하고 깊이 사유하면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해답을 얻을 수도 있다.

인간의 사고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지금 누리는 모든 최첨단 기기도 따지고 보면 생각의 결정체다. 인간이 상상력 속에서 만들어 낸 것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 호킹이 우주는 무(無)에서 스스로 창조될 수 있으며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도 우연의 산물일 뿐이라고 해 과학을 과장과 추측으로 몰고 간 면도 있다. 종교와 과학의 문제는 신과 과학, 창조와 진화의 논쟁으로 요약된다.

`신은 죽었다`고 20세기 초에 니체가 선언한 후, 신은 죽은 것이 아니라 더욱 인간의 옆으로 다가왔다. 모든 종교가 현대인들의 나약한 점을 파고들어 신에 열광하는 세계로 만들었다. 신은 결코 죽지 않았다. 아니 더욱 친근하게 우리 옆에 머물고 있다.

넷플릭스가 풀어낸 `신은 죽었다` 화면에서 숱한 신을 만났다. 신이 아니라 신의 마음을 도둑질해 신도들을 유린한 저주받을 사람들이다. 신이 아니라 가장 저질 인간들이다.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40~5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0~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자살의 원인을 한두 가지로 한정지울 순 없지만 생활고 등 외적인 원인 외에 내면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호킹이 열어 논 우연의 세상에서 삶을 꾸려나가기 힘들어 신의 섭리에서 자신을 찾으려 해도 가짜 신들이 설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살기 힘든 세상에서 뜬금없는 신의 유무 논쟁이 뭐가 달가울까 마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고민하면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깊이 성찰해 볼 수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지만 우리 존재의 근원에 대한 고민도 한번쯤은 해봐야 인간의 허무를 걷어낼 수 있다. 호킹이 우주 존재 이유를 발견해야 신의 마음을 알 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신의 마음을 찾다가 더 낭떠러지를 떨어지는 현실이 겁날 뿐이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등장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신의 죽음으로 기댈 곳이 없는 인간이 절망의 순간에 다시 신을 찾는 아이러니는 계속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