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4:57 (금)
연진아, 2차 가해는 더 아파
연진아, 2차 가해는 더 아파
  • 한승범
  • 승인 2023.03.22 2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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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범   한류연구소장
한승범 한류연구소장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가 개봉 사흘 만에 전 세계 1위에 등극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간절하게 기다렸던 드라마였고, 김은숙 작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전 세계인을 사로잡는 한류의 근본은 스토리이고, 그 중심에 김은숙 작가가 있다. `더 글로리`는 위대한 작품으로 역사에 남을 가치가 있다.

`더 글로리`가 위대한 것은 작품 속에 인간에 대한 놀라운 통찰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표현은 나와 같은 범인을 일깨워주고, 더 나은 인간으로 살게 만들어 준다. `더 글로리`에서 폭력과 상처,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리가 다소 과장되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예컨대 드라마 최고 빌런 박연진(임지연 분)이 가하는 잔인한 폭력이 비현실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폭력에 대해 전혀 죄의식을 못 느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비판도 있다.

나는 초4부터 형, 작은누나와 서울에서 자취를 했다. 5년 동안 거의 매일 형에게 맞았다. 모두 나를 외면했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나에게 5년은 잃어버린 시간이라 사실상 학대 외에 다른 기억이 거의 없다. 몇 년 전 혜화초 동창회에서 나를 기억하는 한 친구를 만났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다고 말하길래 나는 그때 형에게 매를 맞고 학대당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내가 거짓말한다고 했다. 그렇게 자상하고 착한 형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했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형은 우리 가족한테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 남에게는 그렇게 순한 양처럼 행세한 것이다. 방구석 여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형의 학대는 5년만 지옥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학대의 트라우마는 이후 수십 년 동안 나를 지배했다. 항상 주눅이 들었고 자신감이 부족했다. 학교에서는 열등생, 군대에서는 고문관 취급받았다.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알코올중독, 그리고 성적 도착증 등으로 20대부터 20년 넘게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40대 중반에는 120㎏이 넘는 초고도비만이 되었고 온갖 성인병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은 마지막 속죄의 기회를 주겠다는 문동은(송혜교 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잘못한 게 없어 동은아! 전혀! 네 인생이 나 땜에 지옥이라고? 지랄하지 마! 네 인생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지옥이었잖아! 넌 오히려 나한테 감사해야 해! 내 덕에 선생도 되고, 이 악물고 팔자 바꿀 동기 만들어 준 게 죄냐? 용서? 누가 누굴?"

나는 이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다. 김은숙 작가는 폭력 가해자의 추악한 본성을 낱낱이 꿰뚫어 본 것이다. 수십 년도 지난 폭력으로 인해 왜 피해자들이 지금도 고통받는지 시청자에게 알려준 것이다.

폭력 가해자는 대부분 전전두엽 피질에 문제가 생긴 사람이다. 예컨대 맹자의 성선설처럼 우물에 빠진 아이를 보고 측은지심이 생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전전두엽 피질이 손상된 사람은 측은지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바로 전전두엽 피질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손상된 사람은 `인간다움`을 상실한 짐승과 같은 상태이다. 공감력이 떨어지고, 자기만 아는 지독한 이기주의자이다.

가정 폭력, 학교 폭력, 군대 폭력, 직장 폭력 가해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까? 그들이 진심 어린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 대부분 `진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용서는 피해자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연민과 사랑으로 상처받은 자신을 어루만져주고 위로해야 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자신에게 위로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세상에는 `더 글로리`의 보건교사 `정미`와 같은 훌륭한 사람도 존재한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 자신의 아픔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상담받는 것도 좋다. 그리고 일기나 SNS, 혹은 책을 통해 과거의 폭행과 아픔에 대해 밝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프라 윈프라는 어릴 적 사촌오빠와 삼촌에게 성폭행당하고 임신까지 했다. 그는 나중에 용기를 내어 방송과 책을 통해 자신의 치부를 세상에 알렸고, 스스로를 치유하고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었다.

김은숙 작가는 `더 글로리`를 통해 상처받은 전 세계 폭력 피해자에게 위로의 노래를 들려준다. 무당의 죽음을 통해 신이 가해자를 불행으로 이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는 펜을 통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가야 할 길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지난 50년간 겪었던 몸과 마음의 아픔과 치유를 통해 적지 않은 통찰을 얻었다. 앞으로 50년간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을 펜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전할 것이다. 그것이 신이 내게 내린 명령이고 나의 숙명이다.

연진아, 이 옷 벗어서 너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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