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9:48 (토)
나라 밖을 내다보자 49
나라 밖을 내다보자 49
  • 박정기
  • 승인 2023.03.20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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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우리끼리, 우리 식구, 자신이 속한 집단 외의 사람, 곧 외인이다. 외인과의 대화가 편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식구가 아니니까.

한편 같은 집단의 사람에 대해서는 웬만한 일은 덮고 넘어간다. 한 식구니까. 일본의 집단주의 문화는 자기들끼리는 관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전범도 총리가 된다. 게르만의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총독부 관리였던 모리타 요시오에 의하면 조선 총독부 경무국은 1945년 해방 며칠 전부터 단파 방송을 통해 포츠담선언의 귀추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고 하였다. 

총독부가 걱정한 일은 소련군이 참전(8월 9일)함에 따라 소련군에 의한 무장해제, 뒤이어 정치범 석방 등으로 폭동이 일어날 때 일본인 거주자들의 안전 문제였다. 소련은 8월 9일 함경북도 웅기를 점령하고, 12일에는 나진까지 점령한 터라 그대로 진격하면 언제 소련군이 서울에 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었다. 소련군은 일본이 항복한 후에도 진격을 계속 8월 23일에는 개성을 점령하였다. 다행히 미국이 38선을 미리 그어 놓았기 때문에 북한으로 철수하였다. 총독부는 급한 나머지 조선 지도자들의 협력을 구하기로 하였다. 총독부 내 제2인자인 정무총감 엔도 류사쿠는 8월 15일 여운형 씨를 불렀다. 아침 6시, 일본의 천황이 항복선언을 하기 6시간 전이다. 엔도는 여운형 씨에게 조선 동포의 협력을 구하였다. 여운형 씨는 흔쾌히 승낙하였다. 다행히 해방 당일 불상사는 없었다. 

일본과 우리는 이웃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안보에 이르기까지 사실은 뗄 수 없는 관계국이다. 불행히도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두 나라는 원수지간이 되었다. 피차 불행한 일이다.

나는 재계, 체육계 등에 비교적 일본 친구가 많은 편이다. 한 번은 한 일본 친구에게 우리의 어떤 점이 가장 못마땅하냐고 솔직히 물었다. 그의 얼굴이 굳어지며 매우 당황하는 눈치였다. 미안한 나는 얼른 말을 돌려 당신 생각이 아니라 일반 식자들의 생각이 무어냐고 고쳐 물었다. 그 친구 한동안 말없이 나를 쳐다본다. 이윽고 작심한 듯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첫째가 사과 문제였다. 한국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의 지적은 자기들은 열심히 사과했다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그리도 집요하게 요구를 거듭하는지 솔직히 지친다고 하였다. 정확히 옮기면 너무 `피곤`하다는 것이다. 다음이 배상과 징용 관련 일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박근혜 정권 때의 조약을 깬 것과 한국대법원의 배상 판결 문제였다. 그의 관점은 비록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같은 대한민국이 언제는 `예스`고 또, 언제는 `노`가 되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법리적으로도 복잡할뿐더러, 우리 법원에서조차 이랬다저랬다 엇갈리는 판결을 내려 누가 봐도 우리 체면이 안 서는 사안이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따지자면 정말 골치 아픈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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