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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밖을 내다보자 48
나라 밖을 내다보자 48
  • 박정기
  • 승인 2023.03.13 2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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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일장기를 달고, 페블비치 컨트리클럽까지 사버렸다. 하버드대 교수이자 동북아 관련 최고의 석학인 보겔(Ezra Vogel)이 쓴 `Japan as Number One`이란 책은 세계가 일본을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이 금세라도 미국을 따라잡을 것 같은 여론이 돌았고, 도쿄 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출판하여 세계를 향해 있는 대로 큰소리를 쳤다. 80년대 일본의 오만방자한 태도는 가관이었다. 모두가 힘이 생기면 일어나는 부작용이다.

1986년 9월, 일본의 문부대신 후지오 마사유키는 `국권침탈은 당시 일본을 대표한 이토 히로부미와 조선의 고종이 담판, 합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는 글을 `문예춘추` 10월호에 실었다. 그의 글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자, 당시 수상 나카소네는 그를 해임했다. 나카소네는 친한파 총리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음 달 같은 잡지에 후지오는 `방언대신 다시 짖는다`라는 글을 올려 자기의 정당성을 굽히지 않고 다시 주장하였다. `방언대신`이란 우리 언론이 그를 비하하여 붙인 이름이다.

1945년 10월 25일, 일본 외무성은 연합국에 보내는 기밀문서를 작성하였다. 주요 골자는 `연합국은 한일합방 조약과 한국병합선언에 대해 미국, 영국, 소련 어느 나라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하였다. 오만하게도 한국의 해방과 독립을 약속한 포츠담선언을 부인한 것이다. 연합국은 이 문서를 무시해 버렸다.

일본은 나라가 망해서 무조건 항복까지 한 처지에서도 이런 방자한 문서를 연합국에 보냈다. 이것이 변함없는 일본의 혼내(속마음)란 걸 우리는 깊이 새겨야 한다. 그래서 국제관계는 항상 냉철히 바라보아야 하고, 우리를 우습게 안 보도록 힘을 길러야 한다.

전후 일본을 독일에 비교할 때, 일본은 자기 잘못을 모르는 무뢰한이라고 욕먹는다. 그건 사실이다. 독일은 회개하고 과거를 반성하는 점에서는 정말 철저하였다. 뷜리 브란트(Willy Bramdt) 수상이 비가 오는데도 폴란드 전몰자 묘에서 무릎을 꿇었다. 지금도 나치 관련 사실이 드러나면 가차 없이 처벌한다. 독일 국민이 용서 안 한다.

그러나 일본은 다르다. 전후 총리까지 지낸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으로 도쿄재판에 부쳐졌다가 풀려난 사람이다. 세상은 용서 안 하지만 일본 국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독일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분위기가 그러니까 오히려 활개 치고 다닌다.

독일 국민은 나치를 학살자로 본다. 유대인을 죽여도 너무 많이 죽였다. 일본은 전쟁지도자를 애국자로 본다. 그들은 사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사죄라는 게 겉발림이요, 시늉만 한다. 이유는 복잡하다. 일본의 집단주의 문화에는 배타성도 내포하고 있다. 집단주의 문화는 원천적으로 경쟁의식이나 배타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게 집단의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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