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7:28 (금)
공영방송 KBS 50년 `한국인의 밥상` 같아라
공영방송 KBS 50년 `한국인의 밥상` 같아라
  • 김중걸 기자
  • 승인 2023.03.08 2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다미로김중걸    편집위원
김중걸 편집위원

최근 방영된 KBS1-TV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등대 관리원의 딸과 손자가 출연했다. 전남 신안군 압해도에 사는 모자는 섬 사이로 펼쳐진 너른 갯벌에서 채취한 자연산 해산물로 따뜻한 밥상을 차려 한 끼를 나눈다. 이들에게 특별한 물건이 배달된다. 오래된 흑백 TV다. 흑백 TV는 오랜 세월 동안 고장 난 채로 방치돼 있다 아들이 서울 세운상가에서 수리를 의뢰했다. 포터블 흑백 TV는 등대 관리원이었던 부친이 죽도, 어령도 등 남도의 등대를 지키며 함께 했던 애장품이었다. 잘 고쳐진 TV는 안테나의 도움을 받아 되살아났다. 60살이 넘은 등대 관리원의 딸은 가족과 떨어져 외딴섬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을 아버지를 떠올렸다. 흑백 TV의 화면도 요즘의 15인치 노트북의 화면 만 하다. 작은 화면에다 흑백의 답답한 TV 하나로 외딴섬 등대에서 외로움을 달랬을 등대 관리원의 심정을 생각하면 참으로 먹먹하다. 요즘 같았으면 인터넷이나 동영상을 보거나 전화 통화라도 하면서 외로움과 무료함을 달랠 수 있겠지만 작고 흑백인 TV로 낮과 밤을 보냈다고 생각하면 그분들의 노고에 숙연해진다. 흑백TV는 그렇게 추억을 소환한다.

등대 관리원의 60대 딸과 30대 손자는 아버지, 할아버지가 근무했던 등대를 찾는다. 부친은 섬 등대를 순환근무를 하다 지난 1985년 목포구(木浦口)등대로 이동한 뒤 1년 후인 1986년 이 등대에서 정년 퇴직을 했다고 한다. 목포구등대는 목포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등대로 1908년 건립됐다. 모자는 37년 만에 목포구등대를 찾았다. 등대에 올라 대형 등명기를 둘러보며 아버지가 쓸고 닦았을 유리창 등을 살펴보며 아버지를 떠올렸다. 옛날 어머니와 함께 등대를 찾았던 딸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위해 마련한 밥상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섬에서 채취한 물김으로 국을 만들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던 기억을 회상했다. 아버지가 근무하던 섬들은 지천이 먹거리 보물창고였다고 한다. 특히 갯바위에서 막 채취해 끊인 물김국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햇김 철을 맞아 그녀는 이제는 아들이 잡은 낙지를 곁들여 낙지물김국, 물김해물볶음, 반건조우럼찜등을 요리해 진수성찬을 차린다. 어머니의 손맛을 따라 해보며 추억을 꺼내 본 것이다. 우럭은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던 아버지가 솜씨 좋은 낚시로 끝없이 건져 올렸던 물고기다. 그렇게 잡은 우럭은 말려서 쪄내 반건조우럭찜으로 요리해 아버지의 밥상에 올렸다고 한다. 어린 시절 섬에서 부모님과 쌓은 추억으로 한 상을 차렸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차려준 밥상은 `한국인의 밥상`의 부제목인 `그리움을 꺼내 밥을 짓다`가 됐다.

목포구등대에서 등대 관리원의 딸이 부르는 노래 `등대지기`는 가슴을 숙연하게 한다. `얼어 붙은 달 그림자/물결 위에 차고/한 겨울의 거센 파도/모으는 작은 섬/생각하라 저 등대를/지키는 사람의/거룩하고 아름다운/사랑의 마음을` 등대 관리원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되새기기에는 충분했다. 등대 관리원 또는 등대수들에게는 등대지기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철도지기가 없는 것처럼 등대지기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지기`는 접미사로 몇몇 명사에 붙어 `그것을 지키는 사람`의 뜻을 더하게 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 일하는 노동자를 낮춰보는 노동계급 문화에서 기인할 것 같은 안타깝다. 우리의 좋은 말이 화이트칼라, 블랙칼라로 나눠지면서 노동자 간에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계급투쟁을 하게 한다. 직책ㆍ직업군의 이름은 업신여김을 받아야 하는 명칭이 아니다. 스스로가 당당하지 못하면 남들도 얕보게 된다. 지킴이는 이 시대 진정한 의로운 분들이다. 인식의 틀을 바꿔야 한다.

`등대지기` 노래를 들으며 울컥했다. 등대를 지키는 등대 관리원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생각하면서 우리 사회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의 송고한 마음에 박수를 보내게 한다. 오래전 `TV에 내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노래가 있었다. 동영상 스트리밍이 만연하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소시민들은 TV 속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TV 앞에서 시청자가 된다. TV는 공평하지 않다. 세상은 TV에 나오는 사람과 나오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된다. 나오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요새는 TV에 나오는 사람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치인, 그리고 인격 불량의 막말 출연자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국의 밥상-그리움을 꺼내 밥을 짓다`는 공영방송인 KBS 50주년 기획으로 제작됐다. 흑백TV, 등대 관리원과 밥상을 접목해 방송의 순기능을 보여줬다. 모처럼 갈등ㆍ반목을 조장하는 정치 뉴스를 벗어나 좋은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공영방송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