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7:24 (금)
능력파와 충성파
능력파와 충성파
  • 이광수
  • 승인 2023.03.05 1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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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방담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나 기업이나 단체조직에서 능력파와 충성파의 대립과 갈등은 끊임없이 지속돼 왔다. 자기 계발을 위한 피나는 학습으로 능력자가 된 사람과, 실력은 없어도 충성심 하나로 기회주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출세지향주의자들이 있다. 필자는 얼마 전 토, 일 드라마 `대행사`에 푹 빠져 16회로 끝난 연속극을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시청했다. 계속 보아도 지겹지 않는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속도감 있는 깔끔한 연출, 여주인공의 개성미 넘치는 연기에 매료되었다. 이 드라마의 결론은 관습에 물든 비겁한 충성파는 몰락하고 참신한 실력파가 승리하는 내용이었다. 창조적이고 발상의 전환이 중요한 광고대행사의 카피라이터(copywriter)들이 일하는 현장을 리얼하게 그린 기업드라마였다. 마치 어떤 사람의 지난 행적을 떠 올리게 해 더 공감했던 것 같다. 드라마의 결론과는 달리 그는 능력보다 충성심을 금과옥조처럼 신봉한 출세에 눈먼 맹한 리더에게 팽 당해 그의 꿈은 무참히 좌절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만사형통의 철리를 궁구하며 여유자적 보람찬 만년을 살아가고 있다.

능력파와 충성파의 기질은 무척 대조적이다. 능력자는 자기 개성과 주관이 강하다. 조직 내에서도 상사의 일방적인 지시나 부당한 통제를 무조건 수용하지 않는다. 위에서 지시나 명령이 떨어지면 현황을 파악한 후 실현 가능성에 대한 자기의견을 개진한다. 상급자의 지시라고 무조건 수용하지 않으며, 부당한 지시라면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거부하기도 한다. 그래서 조직의 리더들은 능력파의 의견을 무시하기 일쑤다. 출세과대망상증에 걸린 편협한 리더들은 유목불능견(有目不能見), 유이불능청(有耳不能廳)의 도그마에 빠져 있다. 특히 정부 공조직의 경우 대부분의 리더들은 지당족(至當族)에 속하는 충성파를 선호한다. 그러나 IT기업의 오너들은 미래지향적이며 창조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실력자를 선호한다. 그런 인재들을 널리 발굴하여 기업경쟁력을 강화시켜 글로벌기업으로 성장시킨다. 현재 세계IT산업의 선두대열에 있는 우리 기업들은 능력 있는 인재확보에 혈안이다. 특히 AI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참신한 아이디어맨을 발굴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인재시장을 섭렵하고 있다.

그러나 조직 생리상 구성원들은 대개 `대행사` 드라마처럼 크리에이티브(creative)하고 워커홀릭(workaholic)한 상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1981~2010년대에 출생한 MZ세대는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하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환경에 접해왔다. 그들은 개성과 자기애가 강하며 스스로의 만족을 중시해 평생직장 개념이 희박하다. 소비생활도 가치가 있는 곳에 소비하는 미닝아웃(meaning out) 트렌드를 고수한다. 기업의 윤리성을 강조하고 SNS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며 조직리더의 지시나 오더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충성파를 싫어한다. 따라서 이직이 잦고 더 나은 보상과 일을 추구하며 삶의 여유를 추구해 자신과 맞지 않는 직업이나 일은 꺼린다. 소위 일반인들이 선망하는 고시공직이나 `사` 자 달린 직업도 미련 없이 그만두고 다른 길을 선택한다. MZ세대의 가치관은 다양성, 가치기반소비, 자기중심, 디지털 네이티브, 재미추구 등 일과 생활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을 추구하는 워라벨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와 같은 50~60세대에겐 꿈도 꿀 수 없는 가치관이다. 물론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에 태어나 실력으로 출세하던 시대라 평생직장에 대한 신념이 강했다. 요즘은 다양한 직업경력을 선호하지만, 그 시절엔 이직이 많은 이력서를 제출하면 직업부적응자로 낙인찍혀 재취업도 불가능한 시대였다. 필자의 경우 원치 않은 공직에 입문해 평생을 공직에 몸담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늘 사직서를 품고 다녔다. 자신이 갖고 있는 다양한 지식과 능력을 발휘하고 싶어도 공조직의 리더는 능력보다 충성심을 강조했다. 30대 초반에 실력으로 중견간부 양성교육까지 받았음에도 승진은 충성파들에게 밀려 번번이 좌절되는 수모를 겪었다. 아마 공조직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차 없을 것이다. 쓴소릴 마다않는 졸병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부려 먹는 머슴일 뿐이다. 그런 부하를 인정해 줄 만큼 존경스러운 수장은 37년의 공직 생활 중 단 세분 밖에 없었다. 과연 우리 공직사회가 드라마처럼 능력파가 충성파를 몰아내고 제대로 인정받는 시대가 올지 의문스럽다. 오히려 민선시대를 맞아 조직성원을 자기편과 반대편으로 갈라치기하고 표를 의식한 학연, 지연이 더 극성을 부린다고 한다. 특히 선거공신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활개치는 세상이니 유구무언이다. 정치판의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도 별 수 있겠는가.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요,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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