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1:49 (금)
뜻으로 본 한국역사
뜻으로 본 한국역사
  • 이헌동
  • 승인 2023.03.02 2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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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역사를 공부할 때 가까이 두고 읽은 책이 함석헌 선생의 책이다. 바른 역사관으로 역사를 보는 길잡이가 된 책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이다. 아래의 글은 거기서 발췌한 것으로 역사관 정립에 도움이 된다.

역사를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역사라면 지나간 일의 기록으로만 알고 있다. 그래서 역사를 안다면 옛날이야기를 많이 아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이가 적지 않으나, 그것은 잘못이다. 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역사적 값어치가 있는 일을 뜻이 있게 붙잡아야 한다. 그래서 먼저 좋은 책을 골라서 잘 읽어야 한다. 잘 읽는 것은 바른 사관(史觀)으로 읽는 것이다.

역사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재 속에 살아있는 과거다. 역사적 사실이란 해석된 사실이다. 고증이나 실증만으로 역사가 되었다고 하는 사람은 식량과 식품을 요리하지 않고 식탁에 올리면서 먹으라고 하는 어리석은 요리사와 같다. 한 권의 씨알의 역사를 써낸 후에야 역사가의 책임이 다해지는 것이다. 역사가의 자격은 그 기억에 있지 않고 판단에 있다.

역사가는 아는 것이 많아야 하고 재주가 높아야 하며 식견이 깊어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식(識)이다. 식은 `뚫어봄ㆍ내다봄ㆍ 맞춰봄ㆍ펴봄`이다. 중국의 여숙간(呂叔簡)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앎은 썩은 선비도 할 수 있지만, 때가 되어감을 아는 것은 통(通:뚫린)이 된 선비가 아니고는 못한다. 때를 아는 것은 누구나 보기만 하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되어가는 것을 아는 것은 앞을 내다보지 않고는 못한다"고 한 것은 옳은 것이다

계급은 단순한 이해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그 관계가 끊어지면 그 감정이 없어진다. 그러나 민족의식은 개인의 성격을 이루는 데까지 미치는 것이므로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역사는 한국 사람의 역사다. 어쩔 수 없이 한국 민족의 역사다. 한국 역사로 되어진 것은 한국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 옛적 일을 보면 한민족이 자라난 보금자리는 한반도가 아니고 만주였다. 우리 단군조선이 나오고 부여가 나오고 고구려와 발해가 나오고 그다음 금나라, 청나라도 나왔다.

1810년대에 유럽 정치계의 보수주의 화신이었던 메테르니히는 어지러움에 빠져있는 이탈리아를 쉽게 먹을 욕심에 깔보고서 "이탈리아는 지리학상의 이름뿐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기네 손으로 통일국가를 세워서 그 말이 무지한 망발의 소리인 것을 증명하였다. 그 통일운동에 지추를 놓은 사람이 마치니다. 마치니가 국민들과 특히 젊은이들에게 자기네 나라 옛날의 빛나는 역사를 가르쳐 줌으로써 하였던 것이다.

역사는 결국 사람의 역사다. 역사의 흥망원인이 되는 것은 그 역사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격이다. 한국 역사에서도 이런 사실을 낳을 수 있는 한국 사람이 있어야 한다.

착하고, 평화롭고, 너그럽고, 날쌔고, 조심성 있고, 무게가 있는 대민족의 기상이다. 큰 나라를 세우고 고상한 문화를 낳을 수있는 자격이다. 5000년 전에 그만한 나라를 세웠다는 것은 상당히 발달된 조직력을 가진 것을 말한다. 세계 역사에 이런 민족은 많지 않다. 많은 시련을 치르고 나온 민족이다. 재능에서 말하면 세계에 자랑할만한 독창적인 여러 가지 발명이 있다. 다만 그것을 키우지 못한 것이 죄다.

지금은 감격도 없고 흥분도 모르는 민족이다. 약아빠진 것은 국민적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초에 큰 국민적 성격을 가진 것이 중간에 그만 달라져 버린 것이다. 한국 사람은 심각성이 부족하다. 파고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힘이 모자란다. 깊은 사색이 없다는 것이다. 민족의 혼에 불을 달구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고구려에 선인이 있었고, 신라에 화랑이 있었으며, 고려 때에도 국선과 국사가 있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쓴 다음 참고로 했던 옛 기록을 없애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본래의 정신과 모습을 잃어버렸다. 김부식은 사대모화 사상에 젖어서 예로부터 오는 우리 말이나 생각을 중국관점에서 한문식으로 고치고 중국보다 나은 것은 기록에 남기지 않고 없애 버렸던 것이다. 삼국사기는 옛날 일을 알려주는 것보다 모르게 가려버린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김부식만인가? 지금도 그렇다.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은 우리나라에 오지도 않은 기자가 평양에 살았다고 숭배하면서 만주에 있었던 우리 역사를 한반도 안으로 축소시킨 반도사관으로 역사를 왜곡하였다. 이것이 식민사관에 의해 악용되고 역사적 진실이 왜곡되어 지금까지 교육되고 있다. 이것을 금과옥조로 여겨서 밝은 미래를 가로막고 있는 집단이 식민사학이다.

한민족이 역사의 무대에 나타난 것은 4~5000년 전이다. 단군께서 나라를 세우던 때는 요임금과 같은 때라 한다. 단군 이야기에 풍백, 우사, 운사가 있는 것은 농업을 주로 하였다는 것으로 단군이 팽우를 시켜 산천을 다스리게 했다는 것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단군이 정치하는 곳을 신시라고 했다. 그것은 도시 살림이 시작된 것을 말한다. 고을이 커지고 사고팔면서 법이 생기고 제도가 생기고 계급이 생겼다는 것이다.

단군이란 복잡해져가는 사회의 변동기에 뛰어난 힘과 재주와 내다보는 생각과 어진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분이다. 사람 무리에 질서를 세우고 조직을 주어 처음으로 우리라는 생각을 해가며 살도록 지도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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