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3:34 (목)
고등어 이야기
고등어 이야기
  • 김제홍
  • 승인 2023.03.01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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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경남의 도어(道魚)가 `월하미인`이라는 볼락이라면 부산의 시어(市漁)는 `바다의 보리`라는 고등어이다. 고등어는 우리나라의 모든 연안에서 잡히고, 탐식성이 강해 미끼가 없어도 낚을 수 있는 생선이지만 특히 부산ㆍ경남 지역 사람들은 고등어 소금구이를 `고갈비`라고 부르며 좋아한다. `어머니와 고등어`라는 노래처럼 고등어구이는 어머니의 사랑을 상징하는 반찬이다.

고등어(皐登魚)는 `등이 부풀어 오른 물고기`라는 뜻이다. 생김새가 옛날 칼과 비슷하다고 해서 `고도어`(古刀漁), 어린 고등어는 순 우리말인 `고도리`, 잡는 순간 배에서 바로 소금으로 절여야 했기 때문에 `뱃자반`, 그리고 무늬를 가진 물고기라는 뜻의 `벽문어`(碧紋魚)라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고등어를 사바(鯖,さば)라고 하는데, 옛 일본에는 고등어가 아주 귀한 생선이었다. 어느 날 어느 일본인이 나무통에다 고등어 두 마리를 담아서 관청에 일을 부탁하러 간 것이 와전되어 `사바사바한다` 라는 뜻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세종실록`에 고등어가 황해도와 함경도 지방의 특산물이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고등어를 먹었던 것 같다. 산란을 끝내고 겨울을 나기 위해 왕성한 먹이 활동을 한 가을 고등어는 기름이 가득해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동해안에서 잡은 고등어는 영덕의 강구항에서 달구지에 실어 안동의 장터로 보냈는데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라 상하지 않도록 염장 처리를 했다. 염장 고등어는 안동에 도착할 즈음에는 육질이 단단해지고 간이 잘 배었다고 한다. 허균이 전국을 돌며 각각 지역의 특산품에 대해 쓴 책인 `성소부부고`에 안동 고등어 맛을 칭찬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경남 통영시 욕지도는 고등어의 고향이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욕지에는 고등어 잡는 어선이 500여 척, 운반섬이 290척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 하루에 잡히는 고등어 수가 10만~50만 마리에 달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잡은 고등어는 염장을 했다. 고등어를 소금간해서 묻어 두는 독을 `간독`이라고 했는데 욕지도에서 간독이 가장 많았던 곳은 좌부랑개(座富浪浦, 자부 마을)였다. 욕지도 인구가 1만 5000여 명, 통영 인구가 3만여 명 시절이다.

욕지도 간고등어는 선박으로 인근 통영뿐 아니라 마산까지 공급되었다. 1899년 개항한 마산은 일제 강점기 삼남 물류의 중심지였다. 욕지도 간고등어는 마산에서 육로를 따라 서울, 만주까지 팔려 나갔고, 해로를 따라 시모노세키를 통해 일본뿐 아니라 대만까지 운송됐다.

1968년 정부는 욕지도를 어항시설과 냉동, 유통 기능을 갖춘 `어업전진기지`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욕지도 고등어는 남획으로 사라져갔다. 조업기술이 발달하고 선박의 속도는 더 빨라져서, 멀리서 어군을 발견하면 고등어보다 더 빨리 쫓아가 일망타진했으니 고등어 씨가 마를 수 밖에 없었다.

지난 2005년에는 서울에서 펄떡거리는 고등어가 횟감으로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지금 욕지도는 횟감용 고등어 양식으로 옛 명성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 전국 고등어 전문 횟집의 고등어는 대부분이 욕지도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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