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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본질 14 참나는 알 수 없다
존재의 본질 14 참나는 알 수 없다
  • 도명스님명
  • 승인 2023.02.27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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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정담도명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신사정담도명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달마대사란 스님이 있었다. 그는 인도 향지국 출신의 왕자로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고 중국으로 가서 선종(禪宗)의 초조(初祖)가 된다. 후대 그의 독특한 모습을 모델로 달마도(達摩圖)라는 그림이 유행했는데, 조선시대 김명국의 달마도가 수작에 속한다. 달마도는 수맥을 차단하고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데 효과가 있다고들 한다. 사실 여부는 그만두고 그러한 말이 나오게 된 데에는 달마대사의 `법력`(法力)이라는 영험한 힘이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송나라 때 역대 조사들의 행적을 다룬 `경덕전등록`을 보면 달마대사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그는 서기 6세기 초경 중국으로 갔다. 당시 양나라의 초대 황제 무제는 불교를 매우 숭상하여 그의 별명이 불심천자(佛心天子)로 불리었다. 당시 광주 자사(刺史-도지사) 소앙이 예를 갖추어 영접하고 무제에게 보고를 올렸다. 무제는 즉시 사자를 보내 대사를 궁으로 초대했다.

달마대사를 만난 무제는 그동안 자신이 해온 불사(佛事)의 업적을 자랑하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짐이 수많은 절을 짓고, 경을 쓰며, 스님을 길렀는데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하고 물으니 대사 왈 "소무공덕(小無功德). 아무 공덕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한두 개의 사찰도 아닌 많은 사찰을 짓고 스님을 후원했는데 공덕이 없다니? 자신의 불사 공덕에 대해 큰 치하를 기대했던 무제는 황당해했다. 달마의 대답에 어리둥절하던 무제는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어떤 것이 불법의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하니 즉시 "확연무성(廓然無聖). 뚜렷하여 성스러울 것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에게 무엇인가 특별한 가르침을 기대한 무제는 뭔가에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머릿속이 혼란했던 무제는 실망한 나머지 급기야 "짐을 대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요?"라며 다소 불만 섞인 질문을 했는데, 달마대사는 "부식(不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불교의 중흥 군주로 자부심이 가득했던 양무제의 당황한 모습과 무제를 만난 후 그의 수준에 적잖이 실망한 달마대사의 모습까지 당시의 서먹한 분위기가 눈에 선하다. 이들의 만남은 한 번으로 끝이 났고 무제는 속으로 `달마 그이는 이상한 스님이야` 했고, 달마대사 또한 `무제는 깨달음이 없는 껍데기 불교만 하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이들의 문답(問答)속에 불교의 핵심이 들어 있다. 양무제는 세 번 질문했다. 첫 번째는 불사를 통해 불교에 공헌한 자신의 물음에 대해 달마대사는 "조금도 공덕이 없습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외부로 지은 물질적 공덕은 끝내 사라져 버리기에 진정한 공덕이 되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끝내 사라지는 `유위(有爲)의 공덕`이 아니라, 참나를 찾는 정신적 지혜인 `무위(無爲)의 공덕`이 더욱 가치가 있음을 직설적으로 말해 준 것이다.

또한 "불법에 특별한 것이 있냐"는 물음에 "훤히 드러나 성스러울 게 전혀 없다"라는 달마대사의 답은 진리란 특별한 때와 장소가 아닌 가까이 `항상 드러나는 현상` 속에 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무제의 마지막 질문 "당신 도대체 누구냐"는 물음에 대해 대사는 "알지 못한다"라고 답했다. 이야말로 달마의 진솔한 대답이었는데 무제는 알아채지 못했다. 왜냐하면 존재 본질에 대해 특별한 지식과 정보를 가져야만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양무제와 그것은 결코 지식으로 알 수 없다는 달마대사의 입장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깨달음이란 존재의 본질인 생명현상을 아는 것을 말한다. 또한 생명현상은 언어와 문자로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는 결코 알 수 없다는 지점이 바로 달마대사가 말한 불식(不識)의 자리이다. 이를 두고 옛사람은 "석가도 몰랐거늘 가섭에게 전했으랴"라고 했던 것이다.

지금 인간의 과학문명은 수백억 킬로까지 떨어져 있는 별들을 관측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아는 물질적 우주는 2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현대의 과학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살아있는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를 완벽하게 규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생명이란 인간의 생각속에 고정할 수 없으며 오히려 생각이야말로 생명속에서 부침하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우리가 `자기`라고 인식하는 것은 몸이라는 외형적인 모습과 그것을 이루는 물질적인 구성요소 그리고 생각으로 이루어진 지식과 정보 정도이다. 그러나 자기 생명의 본질은 결코 생각으론 알 수 없다. 이것이 달마대사가 양무제에게 말한 진심이었다. `오직 모를 뿐`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봐야 한다. 생명의 본질은 인간의 생각으로 알 수 없다는 그것이 바로 참다운 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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