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3:52 (목)
나라 밖을 내다보자 46
나라 밖을 내다보자 46
  • 박정기
  • 승인 2023.02.27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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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아나미는 부하들도 저버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마지막 선택은? 죽임이다. 그는 할복을 택한 것이다. 사무라이의 사고방식이다. 그는 20세기 사무라이였다. 모두가 정신주의를 추구한 결과다.

여기 동양과 서양의 가치관이 갈리는 순간이다. 유교나 신도(神道)의 현실주의 세계관에는 내세관이 없다. 선험적 관념이 부족하다. 일신교의 절대자가 없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생명경시 현상이 일어나는 주원인이다. 그런데 그렇게 깔끔하고, 사꾸라(벚꽃)처럼 활짝 피었다가 깨끗이 지는 화끈한 민족이 세계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못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베네딕트는 유명한 `국화와 칼`을 썼다. 그녀의 책 제목이 상징하는 이중성 때문이 아닐까. 즉 손에는 국화를 들고, 허리엔 날 선 일본도를 찼다. 곁과 속이 다르다. 스스로 이중성을 인정하는 일본말도 있다. 혼내(속마음)와 다데마에(겉모습)다. 그러니까 일본 사람 말은 자기 속마음과 전혀 반대일 수 있다. 싸움을 좋아하면서 얌전하고, 불손하면서 예의 바르고, 제 것은 지키면서도 남의 그것을 잘 받아들이고, 충실하면서 불충실하고, 용감하면서 겁쟁이다.

일본 사람의 이중성은 일본인만의 결점은 아니다. 어느 민족, 어떤 개인에게도 조금씩은 다 있다. 다만 다수 경향이 그런 특성이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2차대전 중 미군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의 하나가 일본군 포로의 태도였다. 일본군은 전쟁포로를 최대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교육했다. 따라서 전쟁 초기에는 포로가 되기 전 대부분이 자결을 택했다. 그런데 죽음으로 반항하던 일본 군인이 일단 포로가 되면 놀라울 정도로 미군에 협조를 잘한다. 부대 비밀도 서슴지 않고 분다. 처음 미군은 당황했다. 포로의 진술이 연막은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놀랍게 모두가 사실이다. 죽기로 싸우던 병사의 태도가 돌변해서 진짜 협조를 하다니, 이중성이란 말을 듣게 될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이건 일본인들은 닦고 다듬어서 순전한 본질, 원형으로 접근시킨다. 에센스만 남긴다. 곧 끝없는 아름다움의 추구다. 그래서 그들은 남다른 미각, 심미안을 갖고 있다. 이 정신주의가 좋은 점도 있지만 부작용도 많다. 무엇이건 지나치면 부작용을 일으키는 법. 죽는 것조차 아름다움으로 보는 죽음의 미학(美學), 20세기 일본 천재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 같은 게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2차 대전 때, 미국이 일본과 싸우면서 큰 의문에 싸인다. 서양에서는 인간의 본성상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던 전시관례가 일본인에겐 안 통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당황했다. 도대체 일본인이란 어떤 인간인가? 죽어도 항복은 안 한다. 더는 못 견딘다 싶으면 반자이 돌격을 해서 전원이 죽는다. 비행기에다 폭탄만 싣고 항공모함에 돌진한다. 미군 기준으로는 모두가 상식에 벗어난 행동이다. 미친 짓이다.

일본군의 돌격 전술은 오랜 역사적 전통이 있다. 전국시대 선봉에 서서 적진 깊이 쳐들어가는 게 무사의 영예요 미덕이었다. 그 전통적 돌격 전술이 1905년, 러일전쟁 때도 주효한 게 탈이었다. 다롄의 203고지 공격 때, 잘 준비된 방어진지를 소위 백병돌격으로 고지를 점령하였다. 그때부터 돌격 전술이 서구식 현대전에서도 통한다고 속단하고, 1909년 일본인 보병 교범인 `보병조전`을 제정하면서 육군의 최고 전술로 채택하였다.

돌격 전술의 밑바닥엔 강력한 화력도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그러니까 화력으로 잘 편성된 방어진지에 대해서도 겁없이 돌격을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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