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1:50 (목)
바람 속의 먼지
바람 속의 먼지
  • 이광수
  • 승인 2023.02.26 2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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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방담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나는 눈을 감아요. 잠시 동안만/그러면 그 순간은 지나가 버리고/내 모든 꿈은 눈앞에서 한낱 호기심으로 지나쳐 버려/바람 속의 먼지일 뿐이야/그 모든 것들은 바람 속의 먼지인 것을/늘 같은 옛일은 망망대해의 한 방울 물일 뿐인 것을/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땅 위에 부셔져 헛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을/우리가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만/바람 속의 먼지일 뿐이야/우린 모두 바람 속의 먼지 겉은 존재일 뿐이야/그렇게 집착하지 마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땅과 하늘 밖에는 모두 사라져 버리는 거야/당신 돈을 모두 준다고 해도 단1분도 살수 없어/바람 속의 먼지일 뿐이야…`

영국 태생의 유명 성악가이자 팝페라 가수인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이 불러 히트한 `바람 속의 먼지`(Dust in the wind) 노래가사이다. 인생의 허무와 부질없는 인간의 욕망을 바람속의 먼지 같은 허망한 존재로 노래했다. 감미롭고 아름답지만 멜랑콜리하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답답할 때면 이 음악을 즐겨 듣는다. 질풍노도의 지난날은 아득한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독서와 글쓰기로 보내는 내 만년의 삶은 그런대로 여유롭고 평안하다.

돈이 최고라는 물질 만능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은 돈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모든 것을 금전으로 셈하고 등급을 매기는 돈세상이다. 그러나 한발 물러나 이웃집 아저씨의 갑작스런 부음을 듣거나, 나와 가깝게 지내던 지인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으면 생의 허무감을 느낀다. 잠시나마 삶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다시 현실세계로 눈을 돌리면 전혀 딴 사람이 된다. 어떤 사람은 억 소리 나게 살면서 수억짜리 외제 고급차를 굴리며 거들먹거리고, 강남의 골든 아파트에서 한강을 조망하며 허세를 부린다. 그러나 몇 천 만원의 전세보증금이 없어서 달세이사를 밥 먹듯이 하며 후진 삶을 사는 사람들은 상실감으로 세상 살기가 싫어진다. 죽지 못해서 산다는 푸념은 이런 현실적인 삶의 격차가 낳은 괴리감에서 오는 자괴감이다. 그리 길지도 않은 인생인데 생명을 유지하며 사는 동안만큼은 남들보다 더 잘 살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철학관에서 말하는 사주팔자 탓인지 현실은 내 생각과는 정반대의 길로 나를 인도한다. 신기류 같은 꿈을 좇다가 인생 최악의 밑바닥까지 떨어져 절망한다. 그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의 의미가 무엇이며 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보통사람인 필부필부의 삶을 누리며 산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죽음이란 숙명을 피해 갈수 없는 인간은 결국 시간과의 긴 줄다리기 끝에 생을 마감한다.

바람 속의 먼지 같은 티끌에 불과한 인간임에도 온갖 모순된 행동과 일탈행위로 얼룩진 삶을 살아간다. 어릴 땐 어서 커서 어른이 됐으면 하고, 청년이 되면 독립해서 성공해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원한다. 비혼을 추앙하는 청춘들도 실상은 자신이 꿈꾸는 삶의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지 못한 소치의 변명일 뿐이다. 물론 사람마다 인생관이 다르기 때문에 필자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다. 마치 신부와 스님의 생각이 다르듯이. 노자도덕경 제50장 생사장(生死章)에 출생입사(出生入死)라고 했다. `세상에 나옴이 태어남이고, 땅으로 들어감이 죽음이다.`는 뜻이다. 이는 천지 만물의 생사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출생입사의 본질은 단지 태어나는 것이 죽음에 들어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사의 자연법칙을 이겨보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인간의 헛된 욕망을 줄이고 순리대로 살라는 뜻이다. 순리를 따름이란 변함없는 항(恒)을 말한다. 시지즉지(時止則止, 머무를 때 머물고)하고, 시행즉행(時行則行, 행동할 때 행동)하면 사람답게 사는 길이 훤히 보인다.

지난 2011년 미국 케이프커내배럴 공군기지에서 쏘아 올린 화성탐사선 큐리오시티호가 화성의 게일분화구에 안착해 생명체의 존재 흔적을 탐사하고 있다. 얼마 전 뉴스에 큐리오시티호가 찍어서 보낸 지구 모습을 보니 작은 불빛 한 점에 불과했다. 지구에서 225억㎞ 떨어진 화성에서 바라본 지구는 `바람 속의 먼지`처럼 작게 보였다. 광대무비의 우주 속에 존재하는 작은 행성인 지구에는 79억 명의 인간이 살아간다. 하루도 편한 날이 없는 세계 곳곳에는 광기 어린 독재자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수십만 명이 죽어난다. 또한 튀르키예 참사에서 보듯이 자연재앙인 지진이나 화산폭발, 풍수해, 한발 등은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우주 속의 한 점에 불과한 지구임에도 온전히 평화를 누리고 사는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러시아의 0.12%에 불과한 좁은 땅에 남북으로 분단된 한국도 온전한 평화를 누리는 나라로 보긴 어렵다. 기껏 100년도 못사는 초로인생이니 일래일거(一來一去)의 순리대로 마음 편히 살다가 떠나는 거다. 사라 브라이트만의 노래가 봄바람을 타고 고독한 산보자의 서재 가득 여울져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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