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8:42 (금)
착한 사람, 만만한 사람
착한 사람, 만만한 사람
  • 한승범
  • 승인 2023.02.22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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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범     한류연구소장
한승범 한류연구소장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고 전율을 느꼈다. 드라마를 관통하는 `폭력과 복수` 키워드는 시청자 대부분 직ㆍ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도 이 주제에 관해 거의 평생 고민했기 때문에 드라마를 몇 번이고 시청했다.

나는 초4에 6살 터울의 형과 두 살 많은 작은 누나와 서울에서 자취를 했다. 꿈에 그리던 서울에 살게 됐지만, 첫날부터 악몽이었다. 형에게 매일 혼나고 매를 맞았다.

물리적 폭력보다 더 상처를 줬던 것은 언어폭력이었다. "너는 커서 감방에 갈 거다." , "깡패도 못될 X이다." 등의 말로 어린 소년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무서운 것은 이 말들이 가족을 세뇌했다. 형은 장남이고 집안에서 절대적인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중2 때 형에게 처음으로 "나중에 커서 내가 복수하면 어쩌려고 이렇게 때려?"라고 대들었다. 그날 너무 맞아 기절했었다. 하지만 이후 형은 단 한 번도 나를 때리지 못했다. 해방됐고 신세계가 펼쳐졌다. 고삐 풀린 망나니처럼 놀았고, 당연히 성적은 바닥이었다. 일 년 뒤 나는 고입 시험에 떨어졌다. 죽고 싶을 정도의 수치심으로 치를 떨었다. 내 인생이 형의 예언처럼 될까 봐 너무 두려웠다. 1982년 고입 재수를 했고, 이후 학문적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더 글로리`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은 박연진, 이사라 등의 학교 폭력으로 자퇴하고 공장에 다니며 복수를 꿈꿨다. 주경야독으로 교대에 입학하고 선생님이 된다. 문동은이 복수를 실행하면서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물한다. "나 지금 되게 신나, 연진아!"라고 말하는 문동은은 행복할까?

세상은 넓고 나쁜 사람은 많다. 살아오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상처받았다. 특히 가깝던 사람들에게 당한 배신은 아픔이 컸다. 그들에 대한 나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나름 처절하게 응징과 복수도 했다. 엄청난 도파민이 분비돼 문동은의 말처럼 복수는 되게 신난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져 가해자를 직접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고 힘들 때는 종교의 힘을 빌리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배신뿐이었다.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쓰고, 그들은 `만만한 사람`으로 읽은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전전두엽 피질 덕분에 이타적이고 사랑을 베풀 수 있다. 인류는 전전두엽 피질 덕분에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 남의 음식이나 아내를 뺏는 이기적인 초기 인류는 모두 도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이기적인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기적이고 공감력이 떨어지는 극단적인 경우는 연쇄살인마ㆍ사이코패스이다. 이들의 전전두엽 피질은 선천적으로 훼손돼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연쇄살인마는 피해자 죽음의 고통보다는 자기 손에 난 작은 상처를 더 아파한다.

학교 폭력, 가정 폭력 등의 가해자는 대부분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소시오패스이다. 이들은 전체 인구의 4%를 차지하고,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자신의 성공ㆍ재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이다. 하지만 피해자, 환경 탓으로 돌리며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한다. 소시오패스는 강자에게 아첨하는 반면 여자, 아이 등 약자에게는 물리적, 언어적, 성적 폭력을 거침없이 행사한다. 대부분 자존감이 밑바닥이고, 시기와 질투로 똘똘 뭉친 부정적인 사람이다.

가해자에게 복수하면 용서를 빌까? 가해자는 과거에 무슨 짓을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또한 잘못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이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가해자들을 직접 용서하는 것은 어떨까? `한번 연진은 영원한 연진`이다. 용서한다고 악한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또다시 그들에게 상처받을 확률이 99.9%이다.

용서는 피해자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연민ㆍ사랑으로 상처받은 자신을 어루만져주고 위로해야 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자신에게 위로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소시오패스는 `인간다움`을 상실한 사실 불쌍한 존재이다. 그런 사람은 복수할 가치도 없다. 가해자에게는 측은지심을 보내면 된다. 공감능력이 없는 가해자는 성공하더라도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은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내 경험상 악인은 어떤 형태라도 자기 죗값을 치르게 되어있다.

가장 아름다운 복수는 행복해지는 것이다.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가해자보다 도덕적 우위에 서면 그는 지옥에 빠지게 한다. 행복한 피해자를 보는 것만큼 불행한 것은 없다. 예컨대 어릴 적 찐따라고 생각해 폭력을 가했는데, 나중에 그가 성인(聖人)이 되었다면 가해자는 어떻겠는가?

그날부터 모든 날이 흉흉할 거다. 나 지금 되게 행복해, 연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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